업무평가 후 계약연장?…필리핀 가사노동자 '쪼개기 계약' 했다
내년 2월까지 시범사업 기간인데, 근로계약은 6월 만료
3개월 단기계약 노동자 1명은 계약종료 후 재계약 안해
서울시, 고용부에 책임 미루기…고용부 "법적 문제 없어"
2025-06-09 17:45:16 2025-06-09 17:45:16
[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돌봄난을 해소하겠다며 정부가 도입한 필리핀 가사노동자가 3개월, 6개월 단위 쪼개기 근로계약에 시달리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올해 3월 시범사업 기간이 1년 더 연장됐지만 노동자들의 계약기간은 이보다 짧은 겁니다. 업체는 업무평가를 통해 계약전환을 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가뜩이나 불안한 외국인 노동자 신분을 더욱 위태롭게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인 가사관리사들이 지난해 8월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버스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9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필리핀, 가사노동자의 쪼개기 계약은 지난 2월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는 정부가 지난해 8월 시작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종료를 앞둔 때였습니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는 국내 저출생과 돌봄난을 해소를 하겠다며 지난해 8월 필리핀 가사노동자 100명을 들여왔습니다. 필리핀 가사노동자는 9월부터 업무에 투입될 예정인데, 그보다 한 달 앞서 입국시킨 뒤 교육을 받게 한 겁니다. 사업에 참여한 업체는 두 곳으로 각각 노동자 70명, 30명을 고용했습니다. 
 
6개월 시범사업 기간 종료를 앞둔 올해 2월, 서울시와 고용부는 시범사업 기간을 3월부터 2026년 2월까지 1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두 업체는 필리핀 가사노동자를 기존 근로계약을 갱신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생겼습니다. 올해 3월 시범사업이 1년 연장되는 과정에서 필리핀 가사노동자 11명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남은 건 89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A업체는 62명과 연장된 시범사업 운영기간과 동일하게 1년 근로계약을 체결했습니다. B업체는 필리핀 가사노동자에 따라 기간을 달리 정했습니다. 계약 갱신여부를 결정하기 전인 5월 기준으로 필리핀 가사노동자 27명 중 △3개월 계약은 3명 △6개월 계약은 10명 △1년 계약은 14명이었습니다. 6월5일 계약기간이 만료된 3명 중 1명은 재고용하지 않았습니다.
 
B업체 대표는 노동자와 단기계약을 체결한 데 대해 "아이를 돌보는 돌봄서비스 업무의 특성상 노동자가 고객에 문제없이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업무상 부족한 지점을 보완하면, 예외 없이 계약 연장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B업체 대표는 "다만 한 명의 경우 회사에 알리지 않고 3개월 동안 고객과 사적계약을 체결해 와서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물론 업체가 고용허가 노동자와 쪼개기 근로계약을 한 것이 법 위반은 아닙니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은 고용허가제(E-9) 외국인 노동자가 입국한 날부터 3년의 범위에서 취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근로계약 기간을 따로 정하진 않습니다. 외국인고용법 8조는 "고용허가를 받은 사용자와 외국인근로자는 취업활동 기간 내에서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근로계약을 체결하거나 갱신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가뜩이나 고용이 불안한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쪼개기 계약을 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E-9 노동자는 사업주와 계약해지 후 3개월 동안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출국해야 합니다.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사업기간은 1년 연장을 해줬는데, 3개월만 계약을 하고 연장이 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셈"이라며 "사업장과 근로계약이 종료된 필리핀 가사노동자가 다른 업종으로 취업할 수 있게 한다고 해도 애초 돌봄난 해소를 위해 시범사업을 추진했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이 만료된 노동자의 경우 3개월 내 새로운 고용주와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이어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취업할 수 있는 서비스업이라고 해도, 음식업과 호텔서비스업 정도다. 노동자가 재취업할 수 있는 마땅한 자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외국인(필리핀 가사노동자)을 들여오자고 주장한 서울시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청 관계자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고용부 소관"이라며 "이용 가정이 서울시민이기에 시민의 불편사항에 대해서는 서울시가 대응하지만, 노동법과 관련한 부분은 고용부가 담당한다"고 말했습니다. 
 
고용부 관계자는 "(E-9 노동자의 경우) 처음 국내로 들어올 때 취업활동기간은 3년인데, 근로계약 기간을 꼭 3년으로 할 필요는 없다"며 "사업주가 근로자와 근로계약 기간은 서로 정하면 되는 부분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사안은 아니다"라고 전했습니다. 고용부는 또 재고용이 이뤄지지 않은 노동자 한 명은 서비스업에서 재취업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용부 관계자는 "계약 연장 안될 경우 서비스업 내에서 사업장 변경 가능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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