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진하·김유정 기자] 6·3 조기 대선에 출마한 여야 후보들이 역대 '최장 지각' 발표란 오명을 얻었습니다. 각 정당은 비상계엄과 윤석열씨의 탄핵에 따른 조기 대선의 특수성 때문에 공약 발표가 늦었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그럼에도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에선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서울 성북구 정릉 인근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뉴시스)
공약 발표 시점을 살펴보면 민주당은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28일에 발표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이보다 앞선 지난 26일에 공약집으로 공개했는데요. 반면 개혁신당은 '돈 안 드는 선거'를 유지한다고 밝히며 이마저도 생략했는데요. 역대 가장 늦은 공약이란 오명과 함께 일부 공약은 성장도 개혁도 뜬구름 잡기란 지적도 나옵니다.
연간 40조 투자로 'AI 대전환'…재정+투자유도
민주당은 이날 '진짜 대한민국' 건설을 위해 3대 비전과 15대 정책과제, 247개의 세부 공약이 담긴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약집을 발간했습니다. 이중 산업 분야 핵심 공약은 '인공지능(AI) 3강 도약'을 위해 연간 40조원의 벤처투자시장 육성을 골자로 합니다. 여기에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에너지 마련을 위한 RE100 실현도 제시했습니다.
먼저 AI 강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신 GPU를 확보한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통해 'AI 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역할을 강화하고 대통령실에 AI 정책수석을 신성할 방침입니다. 또 국민 누구나 AI를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국가대표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개발해 오픈소스로 제공하는 등 민간의 다양한 서비스 출시도 유도한다고 전했습니다.
AI 분야는 전반적인 사회 분야로 확대할 것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다만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일부 추상적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민주당은 정부의 AI 분야 투자를 통해 민간의 움직임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구체적으로 모태펀드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퇴직연금의 벤터투자를 허용하는 동시에 법인투자자가 민간 벤처모펀드 출자를 할 경우 세액공제를 확대한다는 전략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주 4.5제·노란봉투법·정년연장 등 재추진
이재명 후보가 지난 대선부터 주장했던 노동시간 단축을 비롯해 연차휴가 확대 등을 핵심 노동 공약으로 발표했습니다. 이 후보는 노동시간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노동시간대 이하로 단축하겠다고 한 것인데요. 사용자의 실근로시간 측정·기록 의무화, 포괄임금 폐지가 세부 내용입니다. 여기에 과로 예방 법률 제정과 연차휴가 확대 및 3년 미사용 연차휴가 적립·활용, 주 4.5일제 도입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추진합니다.
이와 함께 민주당에서는 법정 정년 연장을 이루겠다고 밝혔는데요. 그동안 노동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됐던 문제입니다. 특히 2033년부터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이 65세(현행 63세)로 미뤄지는 상황에서 정년 퇴임 후 연금 수급까지 약 5년의 '소득 공백'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년 연장은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민주당은 입법을 통해 정년 연장을 이루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밖에도 법정 정년연장 논의에서 소외되는 비정규직·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의 고용안정화 방안을 마련하겠고 밝혔는데요. 푸른 씨앗 가입대상을 특수고용·플랫폼 등 모든 취업자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만, 노사문제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제도와 정책 추진이 복잡한 사안이라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는 미지수란 지적도 나옵니다.
고강도 개혁…기재부 재편·에너지부 신설 등
민주당은 정부조직개편안도 마련했습니다. 눈에 띄는 부분은 과도한 권한이 집중됐다고 비판받았던 기획재정부의 분리입니다. 이와 함께 에너지 관련한 부서로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다만, 기존 부처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대대적인 조직개편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 이재명 후보는 서울 강남구에서 진행된 K-이니셔TV '1400만 개미와 한배 탔어요' 유튜브 라이브 출연 후 기자들과 만나 "기재부의 예산 기능은 분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국내 금융 정책 부분이 금융위원회로 가 있는데, 해외 금융 부분은 기재부가 하고 국내 금융 정책은 금융위가 하고 금융위가 또 감독 업무도 하고 정책 업무도 하고 뒤섞여 있어 분리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우리나라가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하는데 에너지 관련 전담 부서(부처)가 없고 산업통상자원부에 한 부분으로 들어가 있다"며 "그런데 앞으로는 기후 위기에 따른 에너지 전환에 우리나라가 집중 투자를 해야 해서 독립된 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법률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라 실제 추진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8일 오후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정문 앞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GTX 전국 확대로 지역균형 발전 약속
이 후보는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광역급행철도(GTX)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국민의힘의 공약과 유사한데요.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5대 초광역권(수도권, 동남권, 대경권, 중부권, 호남권)별 광역급행철도 건설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수도권 주요 거점을 '1시간 경제권'으로 연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수도권과 함께 지방 곳곳에 GTX 교통망을 구축할 경우 부동산 시장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는데요. 특히 GTX의 경우 신규 노선 발표만으로도 수혜 지역의 집값이 고공행진하기도 해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줄 것이란 해석도 나옵니다.
이 밖에도 교통 정책으로 수도권에는 경전철 추진과 '올패스'로 무제한 대중교통 이용 등을 내세웠습니다. 또 서울시내 주요 간선도로를 단계적으로 지하화한다는 방침도 밝혔는데요. 지하화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 등이 필요한 점 등을 고려하면 현실화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또 대중교통의 경우 '준공영제'로 운영하고 있는 서울 시내버스는 꾸준히 적자가 증가하고 있어 역시 문제로 지적됩니다.
국민의힘도 AI에 100조 투자…20만 인재 양성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도 이재명 후보와 비슷하게 'AI 인프라·데이터 확보'를 관련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김 후보는 AI 컴퓨팅센터를 지역 거점에 조성해 AI 대전환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는데요. 이를 위해 GPU 10만장과 NPU를 확보해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에 제공함으로써 국내 수요 대비 공공 공급률을 현 5.5%에서 2030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입니다.
AI 육성을 위해 민관 합작투자를 추진한다는 점도 민주당의 공약과 유사합니다. 이 후보는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으나, 김 후보는 민관 혁신펀드에 10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공약을 밝혔습니다. 특히 김 후보는 AI 분야 유명한 중소기업과 벤처를 발굴해 이들 주도로 생태계를 조성하고 AI 민간투자를 활성화하자고 주장하는 등 민간에 방점을 둔 점이 다릅니다.
또 20만 인재 양성을 하겠다고 밝히며 AI 대학원과 소프트웨어(SW) 중심대학 등 정원 확대, 해외 우수 인력 유치를 위한 인건비·연구비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김 후보의 공약이 지난 윤석열 정부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데요. 또 이공계 기피나 인재 이탈의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구조적인 처방을 제시하는 공약을 전무한 점도 한계로 지목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반노조'로 후퇴한 '노동정책'…윤 정부 닮은꼴
노동개혁에 대해서도 윤석열정부의 모습과 닮아있는데요. 김 후보는 '반노조' 성향이 드러난 공약을 다수 발표했습니다. 특히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정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사업장 규모별로 차등화하는 등 현행 노동관계법 후퇴도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정년연장 정책과 관련해서는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도입해 계속고용 제도를 확립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김 후보가 제시한 노동개혁 중에는 노동 3권 남용을 방지할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는데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조합원 강제동원, 직장점거, 부당한 경비 요구 등을 노조의 노동 3권 남용으로 봤습니다. 이와 함께 교섭 거부와 타노조 활동 방해, 노조 간 폭력·위협 등도 제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김 후보는 건설현장에 특별사법경찰제도를 도입해 노사 양쪽의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과 수사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공약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 주 52시간제를 개편하겠다고 말했는데요. 김 후보는 지난 26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찾아 "'반도체 특별법'에도 포함된 주 52시간제를 현실에 맞게 개편해 노동의 유연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해 퇴행하는 노동관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핵 무장' 주장한 김문수…'안보 정책' 오락가락
김 후보는 그간 줄곧 '한·미 동맹'을 강조하면서도 '핵무장'을 주장해 왔습니다. 이는 북한의 핵에 대비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요. 실제 김 후보는 각종 유세 현장에서 핵 추진 잠수함을 개발하고 합의를 통해 미국의 전술핵을 괌에 배치한 뒤 한국 보호용으로 운용하는 방식을 검토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대선후보들의 마지막 TV토론이 열린 27일에는 '핵무장' 관련 질문을 하자 애매모호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핵무장을 하자는 건가, 안 하자는 건가"라고 묻자 김 후보는 "핵무장이라기보다는 핵 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신중하게 한미동맹의 유지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그러면서 "핵무장을 통해 미국과 한미동맹이 깨져버리면 핵무장 효과는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발표된 공약집에는 '핵추진 잠수함 개발 추진'을 담고 있습니다. 세부 내용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핵잠수함 개발에 대응 능력을 갖추기 위한 핵추진 잠수함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또 '북한의 핵 위협 가중 시, 전술핵 재배치 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식 핵 공유 한미 간 합의' '한미동맹 기반 핵 확장 억제 실행력 강화' 등의 내용도 실렸는데요. 그동안 보여준 '핵무장'론을 그대로 옮긴 셈입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8일 경남 양산 이마트 앞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GTX 등으로 메가시티 조성…일자리 마련 '미지수'
김 후보 역시 정책공약집에 지방 균형발전 공약을 내세우면서 GTX와 도시철도 등을 통한 교통시설 확충안을 내놨습니다. 수도권에는 GTX A·B·C 노선은 임기 내 모두 개통하고 D·E·F 노선은 같은 기간 내에 착공, G노선도 추가로 검토한다는 목표입니다. 타당성 검증 중인 GTX A·B·C 노선의 경기와 강원, 충청 지역 연장을 적극 지원하고 전 노선의 조기 완공도 추진하겠다는 게 김 후보의 공약인데요.
지방권역에는 충청권과 대경권, 부울경, 호남권 등에 광역급행철도 확대를 통해 교통 사각지대도 해소한다고 약속했습니다. 특히 광주~대구 간 달빛철도를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는 등의 내용도 시도별 정책공약집에 담겼습니다. 다만, 이와 관련해 메가시티를 만들기 위한 일자리 창출 관련 정책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동안 유일하게 언급한 것은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외에는 전무해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