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삼성전자와 미국에서 특허소송을 벌이고 있는 특허관리법인(NPE) 넷리스트가 미 법원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군에 대한 별도의 특허소송을 낸 가운데, 삼성전자는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해 달라며 맞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배상금을 목적으로 특허권을 사들인 후 기업에 소송을 거는 이른바 ‘특허괴물’ 행태에 삼성전자는 미국내 등록하는 특허 수를 늘리는 등 근본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뉴시스)
삼성전자는 NPE 넷리스트가 보유한 HBM 관련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비침해 소송’을 지난 20일(현지시각) 제기했습니다. 전날 넷리스트는 ‘외국기업의 무덤’으로 불리는 미 텍사스 동부지방법원에 삼성전자 및 미국 내 자회사들이 특허를 침해했다는 내용의 소송을 냈습니다.
분쟁 대상이 된 특허는 D램 칩 여러개를 쌓아 올린 구조에서 신호를 주고받는 방식과 이를 제어하는 기술이 핵심인 제12,308,087호(087특허)입니다. 삼성전자는 “이 소송은 넷리스트가 삼성전자에 대해 반복적으로 특허 침해를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며 “삼성전자는 087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선언적 판결을 법원에 요청한다”고 소 제기 이유를 밝혔습니다. 특히 “넷리스트는 해당 특허가 공식 발행되기 전부터 삼성을 상대로 침해를 주장하려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2000년 LG반도체 출신 홍춘기 대표가 미국에 설립한 넷리스트는, 2015년 삼성전자와 특허 크로스 라이선스(교차 사용)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 종료와 함께 시작된 소송전에서 텍사스 동부지법은 2023년 3억315만달러, 2024년 또다른 사건으로 1억1800만달러를 삼성전자가 지급하라며 넷리스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항소심 단계인 두 건 외에도 복수의 소송이 현재 진행 중입니다. 넷리스트는 삼성전자 외에도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의 글로벌 반도체기업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5월에는 마이크론을 상대로 4억4500만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넷리스트는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도 다 걸고 넘어진다”며 “업계에서는 다 아는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전자를 겨냥한 특허 소송은 연일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미국에서 특허 침해로 피소된 건수만 86건으로 2023년(51건)에 비해 70% 가량 늘어났습니다. 경쟁사인 애플이 43건이었고 구글 39건, 아마존 46건, 메타 11건을 기록했는데 삼성전자가 유독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고는 특허권자들로부터 특허를 사들인 후 기업에 소송을 걸어 합의금과 배상금을 받아내는 특허관리법인입니다. 유독 삼성이 특허관리법인의 타깃이 되는 이유로는 미국 진출이 활발한 기업으로 매출규모가 크고 기술 제품군이 다양하다는 점이 꼽힙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소송 86건 중 63건이 원고 친화적이고 판결 배상액 규모가 큰 텍사스 동부지법에 몰려있는 점을 보면, 자국 기업에 친화적인 소송 환경도 줄소송에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허괴물’에 맞서 삼성전자는 미국 내 특허 보유 건수를 꾸준히 늘려나가면서 지적재산권(IP)을 확보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등록한 특허 수는 2022년 8500건에서 지난해 9228건으로 늘었는데, 특히 올해 1분기에만 2357개의 특허를 등록했습니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특허는 총 27만618건(3월말 기준)에 달합니다. 삼성전자는 분기보고서에 “(이 특허들이) 사업 보호의 역할뿐만 아니라 유사 기술, 특허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경쟁사 견제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특허 등록과 함께 구매에도 나서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미리 사서 향후 문제가 안 생기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특허 구매에 나설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소송 문제에서도 자유롭고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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