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선 후보 토론에서의 난데 없는 친중 논란
2025-05-21 06:00:00 2025-05-21 06:00:00
언론과 여론은 때때로 외교 문제를 한낱 국내 정치의 흥밋거리로 전락시킨다. 일요일 대선 후보 방송토론에서 이준석 후보가 던진 “이재명 후보께서 중국과 대만에 관여하지 말고 모두 ‘셰셰’(감사합니다) 하면 된다고 해서 비난을 받았는데, 너무 친중국적 입장 아니냐”라는 발언은, 사실 국제 분쟁의 복잡한 구조를 단순한 ‘감사 인사’ 레토릭으로 치부해버리는 극단적 프레임이다. 더 나아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북한과 싸우면 우리는 둘 다 셰셰하면 된다’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지 않으냐”는 구도는, 외교가 국가 이익의 균형과 상호 억지력을 축으로 삼아야 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폭력적 언어다. 대선 후보가 이런 발언을 한다는 게 실로 놀라울 뿐이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역시 “성남시장 시절 사드 철회를 주장했고, 2023년 민주당 대표 시절에는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협박성 발언에도 반박하지 못하고 그냥 물러섰다”며 이재명 후보를 ‘친중 행보’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당시 박근혜 정부도 처음에는 사드 배치 불가, 사드배치 협상도 불가하다는 소위 '3불' 입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재명만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주한중국 대사의 발언에 대한 대응은 당시 정치인 누군가는 중국 대사의 손을 잡아야 했을 때였다. 이를 마치 한 개인의 일탈적 ‘친중 행동’처럼 묘사하는 것은, 사실 외교 현안을 선거용 흑색선전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비겁한 수사에 다름 아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공격적 프레임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작년 12월 계엄에 대한 담화에서 사용한 언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야당을 “주권 침탈세력”이라 규정하고, “중국산 태양광 패널이 전국의 산림을 파괴할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인식을 퍼뜨렸다. 이는 외교 위기를 빌미로 내란적 공포를 조장하고, 반대 세력을 ‘내부의 적’으로 낙인찍으려는 언어였다. 이준석·김문수의 발언은, 다분히 그 연장선상에 있다. 다시 내란세력의 중국 음모론을 떠올리는 건 필자의 과민함인가.
 
국내 정치 무대에서 외교 이슈를 호도해 분열을 심화시키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가적 자해 행위다. 외교란 국가 간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며, 정치인은 이를 정쟁의 도구가 아닌 국익과 국민 안전을 위한 고도의 전략적 결정으로 다뤄야 한다. ‘친중몰이’가 과도하고 극단적인 언어 테러가 될 때, 그것은 곧 내란의 언어이며 공동체 붕괴의 징후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준석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정선거 주장까지 그대로 계승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중국 해커가 우리 선거에 개입했다”는 극우 세력의 음모론에 대해 선을 긋지 못하는 모습에서도 같은 맥락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이준석과 김문수가 손을 잡고 이재명 후보를 공격하는 것은, 이준석 스스로가 윤석열의 ‘국민의힘’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정치적 야망을 드러내는 행보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남긴다.
 
우리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은, 적을 상정해 가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내란을 종식시키려면, 내·외부의 위협을 분별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가 역량을 키워야 한다. 외교 안보를 선거용 흑색선전으로 소비하는 정치인들에게 유권자는 경종을 울려야 한다. 그리하여 더는 내란적 언어가 대선판에 투영되지 않는 나라, 분열이 아닌 통합으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한다.
 
정치인은 무엇보다 언어의 무게를 인식해야 한다. 극단적 공포 조장 대신 사실과 비전을 제시하며, 합리적 대화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을 때만이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다. 허위와 과장, 음모론으로 점철된 선거 전략은 결국 공동체 분열과 혐오만을 남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불평등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냉정한 논의가 필수적이다. 유권자는 더 이상 언어 폭력에 휘둘리지 않으며, 각 정치인은 책임감을 가지고 발언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언어 폭력과 흑색선전을 넘어설 것인지, 아니면 역사적 책임을 회피할 것인지 향후 평가가 주목된다. 두 후보는 자중하기 바란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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