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혜정 기자] SK하이닉스가 이달 중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에 필요한 TC본더(열압착장비)를 신규 발주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미반도체의 새 장비 ‘TC 본더4’가 채택될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특히 SK하이닉스가 공급사 다변화를 이유로 경쟁사인 한화세미텍의 장비를 도입하면서 오랜 동맹을 유지해 온 한미반도체와의 갈등설이 불거진 데 따라, TC 본더4의 향방은 이들 세 기업의 삼관계를 가늠할 분기점이 될 전망입니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이 14일 출시한 HBM4 생산 전용 장비 TC 본더 4'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한미반도체)
SK하이닉스는 이달 중 TC본더를 대량 발주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한화세미텍에 양산성 검증 등에 대한 보완을 요청한 상태입니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대량 발주를 염두에 둔 조치가 아니겠냐는 시각을 내놓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엔비디아에 납품할 HBM 물량을 이미 완판한 뒤 내년 공급 물량을 협상 중인데 해당 물량을 대응할 청주 M15X 공장을 완공하기 전 TC본더 추가 수주가 필수적인 상황입니다. 수주 규모는 약 50대로 금액 기준으로 15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반도체는 지난 14일 ‘TC 본더4’를 공식 출시했습니다. 곽동신 회장은 이날 출시한 에 ‘TC 본더4’ 대해 “한층 고도의 정밀도를 요하는 HBM4 특성에 맞춰 경쟁사 대비 생산성과 정밀도가 대폭 향상된 점이 특징”이라며 “글로벌 반도체 고객사의 HBM4 양산에 적극 활용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올려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입니다. TC본더는 열과 압력을 가해 D램을 안정적으로 적층하는 HBM 생산의 핵심 장비입니다. 한미반도체는 현재 주류 HBM인 HBM3E(5세대) 12단 생산용 TC본더 시장에서 9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원래 업계에선 HBM4부턴 D램을 쌓아올릴 때 높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HBM 제조에 사용됐던 TC본딩(결합)이 아닌 새로운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칩 간을 범프 없이 구리로 직접 연결해 적층 밀도와 수율을 높일 수 있는 기술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국제반도체표준화기구(JEDEC)가 HBM4 표준 높이를 예상보다 완화하면서 기존 TC본더 장비로도 HBM4 제조가 가능해졌습니다.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 확보에 난항을 겪던 메모리 3사로선 HBM4 양산 시점을 앞당길 수 있게 된 것이지만, TC본더 수주를 앞둔 SK하이닉스는 “신규 장비 구매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HBM4까지는 기존 방식 유지를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HBM4까지는 어드밴스드 MR-MUF 기술 기반 TC 본더 방식을 유지할 예정”이라며 “하이브리드 본딩은 HBM4 이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최근 불거진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 간 갈등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옵니다. SK하이닉스는 공급망 다변화 차원에서 지난 3월 한미반도체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한화세미텍과 420억원 규모의 TC 본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에 한미반도체는 8년간 동결한 TC본더 가격을 28% 인상하기는 한편, 한화세미텍을 상대로 특허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금지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한미반도체를 향한 한화세미텍의 반격도 거세지고 있다. 한화세미텍은 지난달 한미반도체 임원에 대해 내용증명 및 고소(명예훼손)를 진행했고, 최근 특허심판원에 한미반도체의 TC(열압착)본더 관련 특허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무효 심판을 청구하기도 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발주에서 채택되는 장비 업체가 향후 HBM 공급망 내 협력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며, “SK하이닉스의 선택이 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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