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김태은 기자]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우리 경제가 '경기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을 가능성을 공식 시사했습니다. 지난달만 해도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으나, 이번엔 아예 둔화라고 판단을 바꾼 건데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발 관세전쟁으로 통상 여건이 악화하며 수출 둔화가 확인된 탓입니다.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현재까지의 경제 지표엔 도널드 트럼프발 관세 전쟁의 영향이 완전히 반영되지 않았으며, 향후 그 여파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데요. 한·미 관세협상은 현재 진행형이며, 하반기 역성장에 대한 공포도 여전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한층 어두워진 진단…2년3개월 만의 "경기 둔화" 선언
KDI는 12일 공개한 '경제동향 5월호'에서 "대외 여건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경기 둔화를 시사하는 지표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경기 둔화'라는 표현이 KDI 경제동향 보고서에 적시된 것은 지난 2023년 2월 이후 2년 3개월 만입니다.
KDI는 매달 경제동향을 공개하는데, 지난 1월 '경기 하방위험 증대'라는 표현을 2년 만에 처음 사용한 뒤 5개월째 부정적 경기 판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달엔 "대외 여건이 급격하게 악화됐다"는 표현을 추가하며 위기감을 드러냈었습니다.
"건설 부진이 내수 회복을 제약하는 가운데, 통상 여건마저 악화하면서 수출도 둔화하는 흐름"이라는 게 KDI의 진단입니다. 우려스러운 점은 지난해 우리 경제를 떠받쳤던 수출마저 대미 수출을 중심으로 둔화하고 있다는 대목입니다.
실제 4월 수출은 전년보다 3.7%로 증가했지만, 조업일수를 고려한 일평균 수출은 전월보다 0.6% 감소했습니다. 특히 지난달 일평균 대미 수출은 -10.6%로 대폭 감소했고, 낙폭은 미국이 관세를 부과한 자동차(-20.7%)와 철강(-11.6%)에서 두드러졌습니다.
KDI는 "미국 관세인상의 영향이 수출에 점차 반영되고 있다"며 "세계경제에 대한 전망이 하향 조정되는 가운데 통상정책 관련 불확실성이 높아 기업심리는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고 설명했습니다.
내수 부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소비 부진이 일부 완화되는 조짐이 나타났으나, 건설투자가 극심한 부진을 지속하며 내수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요. 건설업체의 시공 실적을 보여주는 건설기성액(불변)은 1월 -20.7%, 2월 -20.2%, 3월 -14.7%를 기록하며 3개월 연속 두 자릿수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이에 따라 3월 전산업생산은 광공업생산, 반도체, 전자부품에서 생산 증가세가 개선됐음에도 직전인 2월(1.2%)과 유사한 1.3%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고용시장도 건설업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둔화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3월 취업자 수는 전월보다 13만6000만명이 늘어나는 데 그쳤고, 건설업에서 18만5000명, 제조업에서 11만2000명이 줄었습니다. 고용률이 정체되면서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2월 6.3%에서 3월 6.6%로 늘었습니다.
내수가 불안하다 보니 소비와 투자 역시 부진했습니다. 소비는 개별소비세 인하 효과로 승용차가 3월에도 10% 증가해 소매 판매(1.5%)를 견인했지만, 승용차를 제외하면 소매 판매는 0.5% 증가에 그쳤습니다.
3월 설비투자는 전년 동월 대비 14.1%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3월(-4.9%)에 비하면 높은 증가율인데요. 그러나 지난달 발표된 한국은행의 5월 제조업설비투자전망 BSI는 90으로 장기 평균(95)을 하회해, 기업들의 투자심리는 여전히 위축된 상태입니다. KDI는 "통상 관련 불확실성이 높게 유지되면서 향후 설비투자 개선을 제약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봤습니다.
서울 명동거리 한 폐업한 가게에 폐점 세일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_
2분기 성장도 잿빛…"충격 본격화"
1분기 성장률이 '역성장'을 기록한 가운데, 2분기 전망 역시 잿빛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서 2차 추경 등 새로운 경기부양 정책 펼치더라도, 3분기가 돼서야 효과가 발생하게 되는데요.
정부가 3개월 내 70% 집행 목표를 밝힌 13조8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지난 1분기에 부과돼, 2분기부터 본격화하는 트럼프발 관세 여파를 흡수할 장치가 없는 겁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2분기에 트럼프 효과가 나타날 것 같다"며 "좋은 협상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면 수출이 어려워지니 성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도 "1분기 역성장을 기록했기 때문에 올해 전반적으로 성장률이 좋아지긴 어려울 것"이라며 "상호관세 부과가 90일간 유예됐기 때문에 2분기 수출 영향은 좀 적을 순 있다. 협상을 잘한다면 다를 수 있지만, 3분기부터는 본격적으로 관세 정책의 영향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도 "2분기에는 성장률이 좀 더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새 정부가 들어와서 경기부양 정책을 시행한다면 3·4분기 성장률이 좋아지는 '상저하고' 추세를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는 반도체나 자동차 분야 기술경쟁력을 가지고 수출을 이끌어 왔는데, 반도체 경쟁이 심화되고 자동차 분야도 중국이 빠르게 따라오고 있다"며 "새로운 정부가 기술경쟁력 혁신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습니다.
정 교수는 "필수추경으로 역성장을 방어할 수는 있지만, 단기적 영향에 그칠 것"이라며 "기업은 당장 이윤이 나는 것만 하지 근본적 미래투자는 잘 하지 않는다. 정부가 단기적으로는 빚을 늘리더라도 내수를 살리기 위해 R&D, 중소기업·자영업자 지원, 복지 등 전방위적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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