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문명과 라오인 이야기)⑨-1 라오스 몽족이 고구려 유민?
고양이 취급 ‘먀오족’에서 세계 디아스포라 민족 ‘몽족’으로
조상신 치우와 ‘구려’ 신화, 몽족과 고구려 상상 가능 연결고리
중국 ‘개토귀류’와 라오스 고산지대 이주가 만든 몽족 정체성
2025-05-12 06:00:00 2025-05-12 06:00:00
동남아시아인도차이나 반도일반적으로 태국과 베트남을 떠올리게 합니다온화한 기후 탓에 전 세계 최고의 휴양 국가이자 관광 국가로 알려진 곳입니다하지만 이들과 맞닿아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 유일의 내륙 국가 라오스’. 낯선 만큼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그 속살을 살펴보면 의외로 우리와 많은 부분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곳이기도 합니다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의 글로벌 프로젝트 은사마가 주목하는 해외 거점 국가 라오스의 모든 것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전통옷을 입은 몽족 소녀.(사진=우희철 작가)
 
1. 몽족 
 
몽족은 중국에 1100만명, 베트남에 140만명, 라오스에 70만명, 미국에 36만명, 태국에 25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몽족 전체 인구를 합하면 1400만명 정도로 추산되니, 국가 단위로 존재했다면 세계 인구 순위로 80위 내에 들어갈 수 있다. 미국에 몽족이 36만명이나 되는 이유는 베트남 전쟁으로 라오스에 살던 몽족이 난민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몽족 영문은 ‘Hmong’. ‘흐몽’으로 읽을 필요 없이 그냥 ‘몽’으로 읽으면 된다. 대문자 H는 몽족 발성에 비음이 섞인 것을 표기하고자 한 것이다. 중국에서 몽족을 먀오족이라 하는데, 한자로는 묘족(苗族)이다. 몽족계 미국인들은 ‘먀오’를 모욕이나 멸시로 받아들이지만 중국의 먀오족은 오히려 자랑스러워 할 수 있다. 과거에 중국에서 먀오가 멸칭으로 쓰였던 건 사실이다. 먀오는 고양이와 발음이 같아 놀리거나 업신여기는 표현이었다. 타이어와 라오어로 고양이가 ‘매우’로 먀오와 발음이 비슷해서 몽족에 대해 흉을 볼 때 ‘매우’라 한다. 먀오족이 몽족이 된 건 몽족계 지식인들의 인권운동에 의한 것이다. 먀오가 멸칭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미국에서 난민으로 받아들일 때 몽족이란 분류를 사용했다. 1994년에 ‘Hmong’이 유엔에 등록되면서 국제적 용어로 굳어지게 됐다. 
 
몽족은 ‘몽’의 의미가 자유나 운명을 뜻하는 그들의 단어 ‘무’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들 역사를 반추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몽이란 인족명이 어떻게 형성됐는진 확실하지 않다. 몽족 언어는 몽-미엔 어족에 속한다. 미엔족은 중국에서 야오족(瑤族)이라 하고, 많은 인족명과 마찬가지로 ‘미엔’은 사람이란 뜻이다.
 
묘족의 선민들이 장강 중류에서 벼농사를 짓던 최초의 인류였단 가설을 따르면, 모판을 의미하는 묘자가 오히려 맞춤형 민족명으로 느껴진다. 물론 당사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민족명으로 불러줘야 하지만. 
 
몽족의 설날 소싸움. (사진=우희철 작가)
 
2. 치우 
 
치우는 몽족의 조상신이다. 치우는 황하 패권을 놓고 화하족을 대표하는 염제와 황제(黃帝)연합군과 싸웠다. 치우는 구려(九黎)연맹체 81개 부락 수령이었다. 몽족 신화에 따르면 치우는 죽었다가도 되살아나는 불사신이어서 염황연합군의 무력으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염제와 황제는 힘 대신 꾀를 내어 미인계를 썼다. 염제의 아내라고도 하고, 황제의 누이라고도 하는 귀가 늘어진 요녀를 치우에게 시집을 보내 구려부락을 정탐하고 치우의 약점을 캐내서 결국 치우를 죽이고 부락들을 불태웠다. 이 패배로 몽족의 북상이 저지되고 이동 방향이 남쪽이 됐다. 몽족의 전설에 치우가 나오고 고구려와 발음이 비슷한 구려가 나오니 한국인에겐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느껴진다.
 
몽족의 유전 정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몽-미엔어족은 양자강과 메콩강 사이에서 발생했다. 같은 어족에 속하는 미엔족은 몽족보다 남쪽에서 발생했고, 몽족 유전체는 산동반도까지 진출한 흔적이 나타난다. 몽족과 한국인은 예상과는 달리 중국 한족보다 유전적 거리가 멀다.
 
라오스 씨양쿠왕주에서 만났던 몽족 가이드는 입담이 좋았는데 몽족이 한족에게 진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조상의 전투력이 약했던 게 아니라 자신의 조상들이 미인에게 약하고 중국인들이 야비했을 뿐이라 웃으며 설명했다. 몽족에게 디아스포라에 대한 멋진 해명을 위해 치우가 필요했을 수 있겠다 싶었다. 
 
몽족의 화전. (사진=우희철 작가)
 
3. 개토귀류(改土歸流)
 
대륙의 중앙정권이 소수민족을 다루는 방식이 있다. 대륙은 넓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 무슨 수로 그 많은 지역과 민족을 통치할 수가 있었겠나. 바로 ‘기미정책’이다. '기'란 말의 굴레, '미'는 소의 고삐이다. 소수민족에게 적당히 자치를 인정하고 통제가 가능한 선에서 옭아맨 것이다. 소수민족 지도자를 회유해 이권을 주면서 중앙정부에 포섭을 했다. 소수민족 간에 서로 견제하도록 적개심과 경쟁을 유도했다.
 
소수민족 지도자들은 지방관인 ‘토사’(土司)로 임명하고 세습할 수 있도록 했다. 토사와 달리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는 ‘유관’(流官)이라 했다. ‘개토귀류’란 토사를 없애고 유관을 파견해 직접 통치하는 제국의 행정개혁이었다. 당나라 대표 소수민족 정책이 ‘기미정책’이었다면 개토귀류는 원, 명, 청대로 넘어가면서 점차 강화됐다.
 
개토귀류가 결정적 국면을 맞게 된 건 청나라 옹정 황제 때였다. 소수민족 땅인 운남, 귀주, 광서, 호남과 사천지역 지배권과 세습권을 가진 토사와 토관을 중앙에서 파견한 관료로 대체했다. 이 정책으로 인해 중국화가 급속하게 이뤄졌다. 이런 급진적 정책을 펼 수 있던 건 옹정제가 세금을 단순화한 ‘지정은’ 제도가 성공한 덕분이었다. 진시황이 중국을 시작했다면 강희, 옹정, 건륭으로 이어지는 청나라 시기에 중국이 만들어졌다.
 
몽족은 기본적으로 혈연적 유대에 의한 집단이다. 씨족이란 집안 어른이 다스리는 곳이니 지배와 피지배가 혈연관계라 집단적 반발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중앙정부는 몽족을 둘로 구분했다. 중국화가 진행된 묘족은 ‘익었다’고 ‘숙묘’, 반대는 날 것이란 의미로 ‘생묘’라 했다.
 
남하한 몽족은 개토귀류에 반발한 생묘들이었다. 반면에 따이족이 대규모로 남하한 건 중앙정권이 송나라 시기까지 정복과 학살을 반복한 결과였다. 라오스와 태국에서 몽족을 고산족이라 한다. 몽족은 기본적으로 농민이다. 산악이 농경에 불리한 건 말할 필요가 없다. 기껏해야 화전이 고작이다. 산이 좋아 몽족이 고산에 사는 게 아니고, 후발자로서 차지할 공간이 고산에만 남았기 때문이다. 선발자였던 라오인은 당시 원주민이던 크무족을 중산간 지대로 밀어내고 저지대를 차지했다. 뒤늦게 내려온 몽족은 라오인과 크무인을 비롯한 원주민을 피해 고지대에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다. 몽족 상황은 태국과 베트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라오어로 상중하가 쑹, 텅, 룸이다. 라오스에서 주류인 저지대 라오인을 라오룸, 중산간지대 크무족을 라오텅, 고산지대 몽족을 라오쑹이라 구분하는 게 편의적이긴 하지만 라오스의 이민사를 반영한 표현일 뿐이다.
 
라오스=프리랜서 작가 '제국몽'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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