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에 국내에서도 출시된 비만치료제 '위고비'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세계적으로 비만치료제 열풍이 거셉니다. 일명 '기적의 체중 감량 주사'로 불리는 오젬픽(Ozempic), 제프바운드(Zepbound)는 미국과 한국 등지에서 일약 국민 약물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살 빼는 주사'가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그 이면에서는 통제 불능의 음성 시장이 형성되는 등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습니다. 병원도 약국도 아닌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처방전도 없이, 100달러면 누구나 살 수 있는 체중 감량 약물. 소비자들이 무방비 상태로 질 낮은 모조품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공급 부족과 고가의 약값으로 인해 환자들이 비공식적인 경로, 즉 온라인 음성시장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심각한 부작용과 투약 오류를 야기할 수 있다며 강력히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Science News 보도에 소개된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 2022년 말, 미국 유타주의 독극물 전문가들은 비정상적인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일부 환자들이 체중 감량제의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를 정량보다 10배 이상 투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당 약물은 당뇨 및 비만 치료제로 쓰이는 오젬픽(Ozempic)과 웨고비(Wegovy)의 핵심 성분으로, 일반적으로는 사전 충전된 주사 펜 형태로 안전하게 사용됩니다. 하지만 조사 결과, 과다 투여된 세마글루타이드는 정품이 아닌 ‘복합 조제 약물’로 확인됐습니다. 이 약물은 정규 제약회사가 아닌 일부 복합약국(compounding pharmacy)에서 제조한 것으로, 투여 방식이 명확하지 않아 환자들이 오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어떤 환자는 20배가 넘는 양을 주사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FDA 공급 부족 해소 선언에도…환자는 여전히 '허기'에 몰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올해 초 엘리 릴리의 제품 Mounjaro, Zepbound의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와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를 공급 부족 목록에서 제외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여전히 약물 가뭄 상태입니다. 주요 제약사인 노보 노르디스크와 엘리 릴리가 생산량을 확대하고 있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험 적용이 제한적이고 정품 약물의 가격은 월 100만원을 훌쩍 넘깁니다. 절박한 환자들은 결국 비공식 공급망, 즉 ‘온라인 다크 마켓’으로 눈을 돌립니다. 이처럼 GLP-1 계열 약물의 음성 유통이 성행하게 된 배경에는 ‘고가의 약값’과 ‘공급난’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이 바로 온라인 음성시장입니다. 현재 인터넷에는 ‘연구용’이라는 명목으로 판매되는 분말 형태의 GLP-1 약물이 넘쳐나고 있으며, 구매에는 처방전도 필요 없고, 신용카드만 있으면 누구든지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들 제품은 사람에게 투여할 수 없도록 설계된 것이며, 재구성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지적합니다.
뉴멕시코주 독극물센터의 조셉 램슨(Joseph Lambson) 박사는 Science News와의 인터뷰에서 “환자들이 어떻게 주사제를 섞고, 얼마나 주사해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구토, 설사, 심한 메스꺼움 같은 부작용은 물론이고 생명을 위협하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실제 미국 독극물 관리 센터에 보고된 GLP-1 관련 사례는 2019년 892건에서 2024년 8,502건으로 무려 10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이 중 대부분은 약물 오용 및 투여 실수로 인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특히 복합약국에서 제조한 제품은 FDA의 사전 안전성·효능 검토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환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복합약국 자체는 불법이 아니며, 약품 부족 상황에서는 종종 필수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근 GLP-1 약물처럼 수요가 폭증하고 상업성이 부각된 경우, 일부 업자들이 이를 악용해 환자를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입니다.
“GLP-1, 필요한 사람에게 안전하게 사용될 때만 좋은 약”
Science News 보도에서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공중보건 전문가 팀 맥키(Tim Mackey) 교수는 “제조사, 약국, 온라인 플랫폼, 심지어 위조품 유통업자까지 모두 돈을 벌기 위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피해자는 결국 환자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자들은 GLP-1 약물이 자신의 삶을 바꿨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체중 감량뿐 아니라, 심혈관 질환 예방, 삶의 질 향상 등 여러 긍정적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믿을 수 없는 공급원에 의존하게 될 때부터 시작됩니다. 대한당뇨병학회 최성희 홍보이사(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는 작년 12월 개최된 심포지엄에서 GLP-1 주사제에 대해서 ‘좋은 약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안전하게 사용돼야 진짜 좋은 약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약사협회 관계자는 “환자들은 반드시 면허를 소지한 약국을 통해 정식 처방을 받아야 하며, 복합 조제 여부와 정확한 투여 방법을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라고 당부합니다.
음성시장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온라인 광고, 원격의료 플랫폼, 소셜미디어까지 총동원되며 '의사 없는 처방'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국내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 의료계의 우려입니다. 비만치료제의 시대, 이제는 ‘삶의 질’을 위한 약이 또 하나의 ‘위험의 통로’가 되지 않도록, 올바른 사용과 제도적 보완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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