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024년 노벨 경제학상과 한국
2025-04-25 06:00:00 2025-04-25 06:00:00
지난해 노벨상은 우리에게 매우 뜻깊은 의미를 지닌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문학의 위상을 드높였기 때문이다. 같은 해 노벨 경제학상은 미국의 대런 애쓰모글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로빈슨 교수가 수상했는데, 이들의 연구 또한 한국과 깊은 연관이 있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이 국가 간 소득 격차를 설명하는 데 사회적 제도의 중요성을 입증한 점을 높이 평가했는데 한국은 그 중요한 사례이다.
 
남한과 북한의 경제성장 격차는 매우 크다. 이 차이를 문화적, 역사적 또는 지리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제도’에 있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 교수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밝혔듯이 남한과 북한의 운명이 극명하게 엇갈린 것은 무엇보다 경제제도의 포용성 여부에 기인한다.
 
포용적 경제제도를 기반으로 해야 경제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는데 주의할 점은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포용적 경제제도만으로 어느 정도의 번영을 달성할 수는 있지만 이를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포용적 정치제도’의 기반 위에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도 한국이 중요한 사례를 제공한다.
 
한국의 박정희 정권 시기는 착취적 정치제도 하에서도 일정 수준의 포용적 경제제도의 채택과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애쓰모글루, 로빈슨 교수에 따르면 당시 한국의 정치적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안정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포용적 경제정책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한국은 빠르게 산업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이 장기적으로 성공한 핵심 이유는 경제제도의 발전과 더불어 정치제도 역시 포용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1992년 이후 다원적 민주주의가 한국 사회에 확고히 뿌리내렸다.
 
세계은행은 2024년 ‘중진국 함정’ 보고서에서 한국이 중진국 함정을 극복한 경제성장의 슈퍼스타라고 평가한 바 있다. 한국이 장기간 경제 번영을 누릴 수 있던 것은 무엇보다 포용적 경제제도와 포용적 정치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다시금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후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애쓰모글루 교수도 한국의 '포용적 국가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정치제도가 착취적 방향으로 회귀한다면 경제적 번영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좁은 회랑』에서 자유와 번영은 단순히 한 번의 선택이나 일시적 성취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와 노력이 요구되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은 아직 그 회랑 속에서 긴 여정을 남겨두고 있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또한 한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양극화를 지적한다. 한국의 양대 정당이 대부분의 사안에서 타협을 이루지 못하는 문제의 배경에도 양극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을 포함한 그 어떤 민주국가도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와도 관련이 깊다. 현재 한국의 대기업 중심 시스템은 경쟁이 결여돼 있어 효과적이지 않다. 경쟁이 부족한 승자독식 구조는 경제적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킨다. 앞으로 우리가 선택하는 제도의 방향이 우리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라는 과거의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 다시금 제도의 포용성을 강화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당면한 역사적 과제이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대학 경영학과 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