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한·미 통상협상의 최대 변수는 '트럼프 등장'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설 경우, 최근 미·일 협상보다 더한 '굴욕 외교'의 모습이 펼쳐질 수 있는데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시사한 주한미군 방위금분담금 인상, 알래스카 천연액화가스(LNG) 참여를 트럼프 대통령이 파고드는 수순입니다. 소고기 월령제한 해제, 대중국 압박 동참 등 곳곳이 화약고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첫 타깃은 '방위비·알래스카 LNG'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공동수석대표로 하는 정부 합동 대표단은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2+2 통상협의'를 진행합니다.
한국은 미국 측의 전방위적 압박을 받을 전망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주 취임 100일을 앞두고, 관세전쟁의 성과를 내야만 하는 상황인데요. 앞서 지난 16일에도 협상을 위해 방미한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을 백악관 집무실에서 만나 주일미군 주둔비 증액 등을 요구하며 협상을 주도했습니다.
한국 정부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등판한다면 단순히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쓰는 걸 넘어서, 미국 측에 주도권을 빼앗길 위험이 큽니다.
일본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나서서 '순순히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한덕수 대행의 경우엔 "맞서지 않겠다"며 저자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상태입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미 협상에서도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이 주요 이슈로 다뤄질 걸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당시, 기존의 6배 규모인 연간 50억달러(7조원)의 분담금을 요구했는데, 이로 인해 협상이 장기간 교착되자 주한미군 철수를 검토했습니다.
그는 '집권 1기 중 후회되는 일'로 한국으로부터 분담금 50억달러를 받아내지 못한 것"을 꼽을 정도로 분담금 인상에 진심입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한미방위비분담협정(SMA)의 재협상은 기정사실로 여겨지기도 했는데요. 그는 현재도 '주한미군 감축'을 언급하며 '관세·주한미군·방위비'의 3종 패키지딜(일괄거래)을 벼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각별히 챙기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도 협상에서 거론될 걸로 보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수익 창출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후인 2031년에야 가능한데요. 이와 별개로 이 프로젝트를 본격적인 궤도에 올려놓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겐 역사적 성과로 기록될 수 있습니다.
알래스카 가스 라인 개발(AGDC)이 밝힌 연간 추정 생산량은 2000만t입니다. 단가를 MMBtu(열량 단위)당 10달러 수준으로만 잡으면, 연간 매출은 100억달러(14조원)에 달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창하는 '북극권 패권'과 '에너지 패권'의 한 축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아카자와 료세이(오른쪽) 일본 경제재생상이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물한 빨간색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착용해보고 있다. (사진=백악관)
한국, 무역제재 동참 땐 '중국 보복'
정부는 이번 방미 대표단에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산업부 외에 외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토교통부·환경부·농림축산식품부·보건복지부까지 8개 부처 관계자로 총 20명 안팎의 대표단을 꾸렸습니다. 미국이 비관세장벽 문제로 제기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관련 부처 관계자들을 대표단에 '차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미국은 일단 미국산 소고기 월령제한 해제, 쌀 저율관세할당 등에 대한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쌀·자동차·소고기 등 특정품목 교역을 한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의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이 경우 협상은 속도를 내기 어려울 걸로 보입니다.
실제 지난주 미국과 협상을 진행한 일본은 미국산 쌀 수입을 검토 중인데, 일본에서도 농민 반발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광우병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이번 협의에서 중국에 대한 제재 동참 요구 가능성도 점쳐집니다. 미국은 고율 관세부과로 중국 기업의 수출 우회 시도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원산지 검증 강화 등을 요구할 전망인데요. 한국이 동참할 경우 수출 타격은 불가피합니다.
중국은 20%에 육박하는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이자, 주요 기업의 생산설비와 공급망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앞서 중국은 지난 21일 미국에 동조해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나라가 있다면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정면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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