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예슬·유근윤 기자]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씨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5개월이나 허송세월한 걸로 드러났습니다. 또 수사권과 수사범위에 발목이 잡힌 탓입니다. 해당 사건은 윤석열씨가 20대 대선 후보 시절 강남에 무상으로 비밀 선거사무소를 운영했다는 의혹입니다. 애초 공수처로 고발이 들어왔지만, 공수처는 선거법 수사권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을 대검으로 넘겼습니다, 하지만 대검도 같은 이유로 경찰로 이관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선거법 위반 사건의 공소시효는 3개월만 남게 됐습니다.
지난 11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현판이 보이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른바 비밀강남캠프 사건은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서울 강남 가로수길의 한 건물 사무실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지도 않은 채 무상으로 선거사무소로 사용했다는 의혹입니다. 윤석열캠프에서 활동한 신용한 전 서원대 석좌교수가 지난해 10월 처음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특히 해당 건물의 소유주는 정상명 전 검찰총장의 사위와 사위의 누나로 알려졌습니다. 정 전 총장은 윤씨 결혼의 주례를 맡았을 정도로 윤씨와 각별한 사이입니다. 이후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건물주 일가가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 직원과 청와대 관리활용자문단으로 각각 채용됐다는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의혹이 커지자 시민단체인 '사법정의 바로 세우기 시민행동'(사세행)은 지난해 11월13일 윤석열씨, 정 전 총장의 사위와 사위의 누나 등 3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사전뇌물수수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없다는 이유로 이달 1일 해당 사건을 검찰로 넘겼습니다. 공수처로 고발장이 접수되고 무려 6개월가량이 지난 시점입니다. 그런데 검찰 역시 수사권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을 이달 18일 서울경찰청으로 이관했습니다.
지난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강남 비밀캠프 내부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수사기관들이 수사권과 수사범위의 문제로 서로 공을 떠넘기는 동안 윤씨의 선거법 사건 공소시효는 마냥 흘러갔습니다. 20대 대선이 끝난 2022년 3월9일 선거일로부터 공소시효가 시작됐고, 그해 5월10일 윤씨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공소시효가 정지됐다가 올해 4월4일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되면서 다시 공소시효가 경과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8월3일에 만료됩니다. 수시기관 입장에선 시간이 촉박한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공수처의 오판으로 수사할 시간만 허비했다는 지적이 불가피합니다. 공수처가 해당 사안이 선거법 위반이라는 걸 인지하고 면밀히 검토했다면, 사건을 바로 경찰로 넘겨야 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에 먼저 보내고, 검찰이 사건을 검토한 후 다시 경찰로 이관하면서 시간이 차일피일 된 겁니다. 이에 대해 공수처 관계자는 "공수처로선 우리 사건이 아니면 일단 검찰로 넘기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수사기관별 수사권 범위가 모호해 적절한 수사기관을 찾지 못했고, 그 결과 수사지연이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사세행은 "공수처는 사세행이 손준성 검사장을 고발사주 의혹으로 고발한 후, 공무상비밀누설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직접 기소한 바 있다"며 "당시도 공무상비밀누설 등으로 보고 인지한 사건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를 들여다봤는데, 이 사건의 경우는 사전뇌물수수와 공직선거법이 관련이 있는데 왜 수사권이 없다고 이첩했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공수처는 지난해 7월 고발사주 의혹을 받은 손준성 검사장의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공무상 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5년을 구형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같은해 12월 손 검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서영교 민주당 명태균 게이트 진상조사단장을 비롯한 박균택, 김승원, 이성윤 등 소속 의원들이 지난해 11월18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화랑을 찾아 윤석열씨의 대선 기간 불법 선거사무소 운영 관련 현장방문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당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공수처가 수사할 수 있었던 배경은 손 검사장이 공무상비밀누설 등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에 따라, 공수처는 형법 127조(공무상 비밀의 누설)를 위반한 경우 수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내란 수괴 윤씨를 직권남용죄 위반으로 보고 수사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시민사회 단체가 수사관할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고발하면 좋았을 것"이라면서도 "수사범위를 국민들도 알기 쉬우면 좋다. 공수처라는 이름에 걸맞게 고위 공직자의 비위 사실, 부패 범죄 등은 공수처가 하도록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검찰과 경찰 수사권, 기소권 분리 개혁을 할 경우 경찰은 지금보다 많은 권력 가질 수 있다"며 "경찰이 공직선거법 위반도 수사도록 하는게 맞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부연했습니다.
선거법 수사 방향과 관련해 수사기관 간 협력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과 검찰이 협의를 해서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경찰이 수사를 마치고 검찰로 송치를 해서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협력 체계를 잘 정비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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