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이 지난 1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5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김태은 기자] 정부가 약 1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습니다. 지난달 영남권에서 발생한 역대 최악의 산불 피해 복구와 미국 관세정책으로 인한 통상 위기 대응, 첨단 산업 경쟁력 강화, 소상공인·취약계층 지원 등에 추가재정 투입을 결정했습니다. 정부는 이번 추경 편성으로 0.1%포인트의 경제성장률 제고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지난 1분기 역성장 전망이 나오는 현실에서 경기 부양 마중물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입니다.
정부는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2025년 1회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습니다. 이번 추경안은 12조2000억원 규모입니다. 당초 제시한 규모보다 약 2조원 늘었습니다. 이번 추경안은 시급한 현안과 직접 관련있고, 연내 신속 집행이 가능한 사업을 중심으로 총 14개 부처에서 93개의 사업을 추려냈기에 '필수 추경'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김윤상 기재부 2차관은 전날 추경안 발표 브리핑에서 "규모가 당초 말씀드렸던 10조원 수준에서 2조원 가량 증가한 것은 산불 피해 복구 규모가 커졌고 미국의 관세 발표 이후 대내외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된 점을 고려한 결과"라며 "또한 국회·전문가 등 각계각층에서 규모 확대 필요성을 지속 제기했고, 그동안 관계부처협의 과정에서 효과성 높은 추가 사업을 발굴하였다는 점도 말씀드린다"고 설명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재해·재난 대응에 3조2000억원 △통상·인공지능(AI) 지원에 4조4000억원 △소상공인·취약계층 지원에 4조3000억원을 각각 투입합니다. 최근 산불피해와 더불어 여름철 태풍·집중호우 등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예산국회에서 감액된 예비비 가운데 1조4000억원을 증액합니다. 이밖에도 국채이자, 주요행사 개최 등에 약 2000억원을 배정했습니다.
김동일 기재부 예산실장은 "민생지원 쪽에 새로운 대형 사업들을 많이 도입했다"며 "추경의 목적에 맞게 금년도에 집행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추경 재원으로는 세계잉여금, 기금 자금을 비롯한 가용재원 4조1000억원을 충당했고, 나머지 8조1000억원은 국채 발행으로 조달합니다. 그만큼 나랏빚은 불어날 예정입니다. 국가채무는 1273조원에서 1279조원으로 약 6조원 늘어납니다. 국내총생산(GDP)대비 비율은 48.4%를 기록하게 됩니다. 나라 살림 지표인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73조9000억원에서 84조7000억원으로 10조9000억 늘어납니다. GDP 대비 적자 비율은 2.8%에서 3.2%로 오르면서 재정준칙 기준(3%)을 넘어섭니다.
올해 총지출은 당초 673조3000억원에서 685조5000억원으로 늘어납니다. 전년 대비 총지출 증가율도 2.5%에서 4.4%로 올라섭니다. 총수입은 한국은행 잉여금 초과수납분, 지방채 이자수입 등이 반영되면서 651조6000억원에서 652조8000억원으로 본예산 대비 1조3000억원 증가했습니다.
사업별로는 재난·재해 대응을 위한 예산(3조2000억원) 중 1조4000억원은 영남권 산불 피해 지역의 복구와 회복을 위해 투입합니다. 부처 재난·재해대책비는 5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 수준으로 늘립니다. 피해 주민 대상 주택 복구(400호) 용도 저리 대출과 피해 지역 인근 신축 매입 임대(1000호)에 2000억원을 지원합니다.
재난·재해 예방·대응력 강화 예산은 1조7000억원을 배정했습니다. AI 감시카메라, 고성능 드론 등 첨단 장비를 도입해 사전 탐지 역량을 강화하고, 산림헬기(6대)와 다목적 산불진화차(48대), 산림인접마을 비상소화장치(1199개소) 등을 확충해 진화 역량을 높입니다. 산불특수진화대의 위험수당(월 4만원)을 신설하고 보호장비 일제 교체(1만5000명분)와 현장 출동인원 회복 차량 5대도 신규 도입합니다. 진화 인력의 신속한 투입을 위한 산불진화임도, 간선임도 투자는 2배 수준(1008억원)으로 확대하는 등 산림인프라도 확충합니다.
올해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와 명일동 싱크홀 사고와 같은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예산도 배정됐습니다. 항공 및 노후 하수관로, 도로 등에 대한 안전투자에 2000억원을 지원합니다.
이어 통상 및 AI 지원(4조4000억원) 예산 중 2조1000억원은 미국 관세 조치로 피해를 입은 기업을 지원하고 통상 리스크에 대응하는데 투입합니다. 관세 피해 기업에는 저리 대출 15조원을 추가 공급합니다. 또 보증·보험(10조2000억원), 기업구조혁신펀드(5000억원) 등 금융 자금을 25조원 규모로 공급합니다. 수출 바우처 지원은 기존 3290개사에서 8058개사로 2배 이상 확대합니다.
최근 중국의 수출 통제 조치 등으로 공급망 불안이 우려되는 희토류, 리튬, 몰리브덴 등 6개 핵심 광물을 조기 비축하기 위해 2000억원도 추가 투입합니다. 통상 위기로 인한 고용 불안 우려에 대비해 '고용유지 지원금', '고용 둔화 대응 지원 사업' 등에도 1000억원을 지원합니다.
환율 급변동 등 외환시장 불안에 제 때 대응하기 위해 '외화표시 외국환평형채권' 발행 한도는 기존 12억 달러에서 35억 달러로 23억 달러 증액합니다. 환율 급변동에 대한 적기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입니다. 외화 외평채 확대분만큼 원화 외평채 발행한도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국내 AI 생태계 혁신을 위한 지원은 1조8000억원 확대했습니다. 연내 최신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장을 확보해 국내 AI 컴퓨팅 성능을 23년 7배 이상 늘린다는 계획입니다.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해 민간 기업 컨소시엄 등으로부터 AI 정예팀을 선발하고 GPU 임차 등의 구매비용을 지원합니다. 석박사급 이상 인재 양성 규모는 1650명에서 3300명 이상으로 늘리고, AI 분야 유망 중소·벤처 기업 등에 투자하는 AI 혁신펀드 규모도 2배 이상 확대합니다. 이밖에도 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예산은 5000억원 규모로 마련했습니다.
민생 지원 분야(4조3000억원) 중 2조6000억원은 내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비용 부담 경감 목적으로 투입합니다. 연매출 3억원 이하 소상공인 311만명에게 공과금과 보험료 납부에 사용할 수 있는 최대 50만원의 크레딧을 지원합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 융자, 지역신보 보증 등 정책자금은 2조5000억원 규모로 확충합니다. 또 중신용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6개월 무이자 할부를 지원하는 1000만원 한도의 신용카드를 발급합니다. 폐업 소상공인의 점포 철거비 및 재기 사업화를 지원하는 희망리턴패키지도 확대합니다.
영세 사업자 매출 기반 확대 목적으로는 1조6000억원을 지원합니다. 특히 연매출 30억원 이하 영세 사업자에게 사용한 전년 대비 카드소비 증가액의 20%를 온누리상품권 최대 30만원 규모로 환급하는 '상생페이백'을 시행합니다. 소상공인 매출 신장과 배달 수수료 부담 완화를 위해 공공배달앱 이용시 2만원 이상 3번 주문시 1만원 할인해주는 방식으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전통시장 등에서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으로 결제하면 사용액의 10%를 환급하는 행사도 실시합니다.
취약 계층 생활 안정 지원 예산도 2000억원 규모로 편성했습니다. 저소득 청년·대학생이나 최저신용자를 대상 맞춤형 정책자금을 2100억원 추가 공급합니다. 임금체불 근로자의 생계 보호를 위해 체불 임금 국가 대지급금 지원 인원을 10만5000명에서 11만5000명으로 확대합니다. 저소득·산재근로자 생활안정자금 융자 공급 대상도 1만8000명에서 2만1000명으로 늘립니다.
이번 추경으로 인한 경제성장률 제고 효과는 0.1%포인트로 예상됩니다. 한국은행이 전날 1분기 역성장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경기 전망을 더 낮춰 잡은 상황에서 이번 추경으로 경기 부양을 이끌어 내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에 정부는 애초에 이번 추경은 경기진작 목적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재해·재난 및 관세 대응, 소상공인·취약계층 지원이 간접적으로는 내수 경기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경기 대응을 목적으로 편성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김 차관은 "경기진작을 목적으로 편성한다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포함해서 소비와 투자 쪽으로 내용이 싹 다 바뀌어야 한다"며 "추경 외에도 필요한 경우 기금변경 등 추가적인 재원보강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국회에서는 추경 규모를 두고 여야가 대립하는 가운데, 민주당은 최소 15조원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김 차관은 추경 증액에 관해 "국회에서 증액 요구가 있을 때 저희가 죽어도 안 된다고 할 이유는 전혀 없다"며 "추경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하면 아주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하려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추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우리 경제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국회에서 추경안을 최대한 신속히 통과시켜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오는 22일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할 예정입니다.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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