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최근 은행들이 횡령·배임 등 금융사고 금액이 과장되게 알려진 면이 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부당대출과 부실대출 등의 개념을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반면 금융감독원은 금융사고 공시 제도를 문제삼는 것은 내부통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은행들 "금융사고 공시 정확해야"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들의 금융사고에 대한 금감원의 중간 발표 이후 금융사고 규모에 대한 기준을 두고 금감원과 은행권이 시각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은행장들은 지난 9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금융사고 공시제도 개선을 건의했습니다. 현재는 사고 발생 시 손실 추정치와 실제 손실액 구분 없이 합산해 공시하기 때문에 실제보다 과장된 규모로 알려지는 문제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에 명시된 금융사고 공시 양식을 보면 10억원 이상의 금융사고가 발생한 은행은 △횡령·사기·배임 등 금융사고 내용 △금융사고 금액 △손실예상 금액 △금융사고 발생일 △금융사고 발생 경위 △사고조치 내용(또는 계획) 등을 명시해야 합니다.
'금융사고 금액'은 금융사고가 발생한 때 은행이 입은 피해금액으로서 회수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을 차감하지 않은 금액을 말합니다. '손실예상 금액'은 금융사고 금액에서 회수예상금액을 차감한 금액을 말합니다. 금융사고를 적발한 시기에 회수예상금액을 추산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다수는 담보 금액을 명시하거나 추후 검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공시하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사고에 연루된 여신이 신용대출이거나 담보금액이 미미할 경우에는 공시에 밝히지 않는다"며 "내부 감사 등을 통해 금융사고의 정확한 규모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혐의 선상의 전체 금액을 명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사고 인지 이후 15일 내 공시해야 하기 때문에 초기 공시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며 "일례로 배임에 연루된 대출을 대환을 하거나 여러번 만기를 한 경우에는 차주를 기준으로 처리됐던 거래를 합산하기 때문에 중복으로 반영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은행장들은 금융사고 금액이 과도하게 알려지는 면이 있다며 공시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 지난 9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민생 경제 및 은행권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국민의힘·은행권 현장 간담회’에 참석한 국민의힘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주요 은행장들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내부통제 부실규모 축소 의도
은행권이 금융사고 공시 제도 개선을 요구한 배경에는 당국이 발표한 부당대출 규모가 과도하다는 인식이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금감원은 올해 초 우리·KB국민·NH농협은행 정기검사에서 3875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을 적발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기업은행(024110)에서 적발된 882억원 규모의 부당대출 사고액까지 합산하면 4800억원 규모에 달합니다.
은행들은 금감원의 검사 강화 기조로 부당대출 규모가 정확하지 않다고 억울해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해당 사고와 관련한 금액뿐 아니라 대출 심사 또는 관리 소홀에서 비롯된 부실까지 '부당대출'이라는 범위에 포함시키면서 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은행 측에서 주장하는 부당대출은 사기나 횡령, 배임, 금품수수 등의 행위와 연계된 사안입니다. 이외에는 여신심사 소홀, 사후관리 미흡 등에서 파생된 손실로 부실이나 내규 위반 대출 정도로 봐야한다는 입장입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범죄행위가 연계된 대출을 부당대출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반면 금융사고의 책임을 축소하려는 시도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사고의 회수율은 지극히 낮기 때문에 손실 추정이냐 실질 손실이냐의 문제는 내부통제 부실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라며 "금융사고 공시를 문제 삼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책임을 줄이려는 의도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은행권에서 횡령·배임 등 수천억원대의 금융사고가 발생하고 있으나 회수율은 미미합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5개 국내 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 금액은 1877억원에 이릅니다. 이 중 금융사고 금액 회수율은 134억원으로 7.2%에 불과합니다.
금감원은 대출 사전·사후 관리 미흡도 '부당혐의'로 보는 것이 정당하다는 입장입니다. 금감원의 다른 관계자는 "대출 심사 소홀이나 관리 미흡도 내규 위반이라는 측면에서도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법의 잣대로 위법이냐 소홀이냐를 따지는 것은 추후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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