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이 역사적 결정의 과정에서 단연 돋보였던 것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었다. 그는 흔들리는 헌정 질서 속에서 헌재 재판관 전원의 뜻을 하나로 모아 법과 정의를 세우는 길을 이끌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프로네시스’(phronesis), 즉 공동선을 달성하는 실천적 지혜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법과 현실, 이상과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최선의 결정을 이끌어낸 그의 품격은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그는 누군가의 자애로운 손길에 의해 다듬어지고 성장했다. 2022년 연말 경남MBC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통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김장하 선생이 바로 그 사람이다. 김장하 선생은 정성을 다해 지은 한약을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며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는 데 헌신한 인물이다. 그는 또한 “돈을 쌓으면 악취가 나지만 뿌리면 거름이 된다”며 병든 사람들을 돌보면서 일군 재산을 사회에 조용히 환원하고 절제와 겸손 그리고 관대함의 덕을 실천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삶은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이성의 안내에 따라 세련되게 다스리는 ‘품성의 덕’이 개인의 수양을 넘어 공동체를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며칠 전,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배구 황제’ 김연경 선수가 수많은 팬들의 아쉬움 속에서 가졌던 은퇴 경기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현역 생활을 마감한 것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최상의 운동 능력을 여전히 발휘하는 시점에서 은퇴를 결정했고, 마지막 경기마저 우승으로 장식하면서 운동선수로서의 삶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스포츠의 본질은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최고의 기량을 겨루고, 승패를 넘어선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하며, 페어플레이 정신을 통해 공동체의 가치를 높이는 데 있다. 최고의 기량으로 팬들에게 환희를 선사했던 선수가 영광스러운 순간에 스스로 물러나는 모습, 그리고 은퇴 경기마저 승리로 장식하는 투혼은 스포츠의 이러한 본질을 훌륭하게 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형배 재판관은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흔들림 없이 공동체의 가치를 수호했고, 김장하 선생은 더 많은 부를 쌓고 널리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무서울 정도로 절제했으며, 김연경은 패배가 임박한 순간에도 엄청난 집중력과 경기력을 발휘하며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업’의 본질에 전념하고 ‘소명’을 다하는 이들의 삶을 보며 모종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극한으로 좇는 가운데 법을 능멸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무너뜨리며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키우는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책임 있는 리더가 어떠한 주저함과 부끄러움도 없이 벌거벗은 본능과 충동 속에서 권한을 무절제하게 행사함에 따라 공동체가 끝없이 훼손될 수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깊을수록 작은 불빛 하나가 가진 힘은 더 멀리 퍼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 다큐멘터리에는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라는 김장하 선생의 말도 나온다.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김장하 선생의 삶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각자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며 ‘자신 속의 윤석열과 한덕수’를 몰아낼 때 공동체는 지켜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은 여전히 단순하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박종현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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