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조기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이 또 은행장들을 호출했습니다. 이번에는 국민의힘입니다. 민생 경제뿐만 아니라 은행권 경쟁력 제고를 위한 의견을 듣기 위한 목적이라지만, 은행들의 속내는 착잡합니다. 이번 정권 내내 은행권을 괴롭혀온 '이자장사' 비난과 사회 환원 압박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은행 역할론 재강조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과 국민의힘 소속 정무위원들은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간담회에는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을 비롯해 이환주 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환 우리은행장, 강태영 농협은행장이 참석했습니다. 지역은행을 대표해서는 백종일 전북은행장이, 인터넷전문은행 대표로는 이은미 토스뱅크 대표가 자리했습니다.
정치권의 은행장 호출은 올 들어 두번째입니다. 앞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월20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 등 6대 은행장과 '상생금융 확대를 위한 간담회'를 연 바 있습니다. 취약층 금융 지원을 충실히 이행해달라는 당부의 자리였지만, 비공개 면담에서 이 전 대표가 특정 매체의 은행권 광고 집행 상황을 물으면서 정쟁으로 비화되기도 했습니다. 이 전 대표가 은행장들을 만난 것을 두고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생 행보를 가장한 대권 놀음"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를 의식한 듯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간담회가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경제 방파제'로서의 은행의 역할을 당부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윤 위원장은 "경제 상황이 엄중해 여러분들의 의견을 많이 들어야겠다 생각해왔다"고 말했습니다.
정무위 여당 간사인 강민국 의원도 간담회 직후 은행장들이 건의한 의견을 설명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은행권에서는 비공개 면담에서 청년 고용 관련 정책자금 확대, 산업 대출 관련 자본 규제 완화, 금융사고 추정 금액 공시 유연화, '1가상거래소-1은행 체제' 완화 등을 건의했습니다.
강 의원은 은행권에 대한 민생 회복 관련 출연 요구는 없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은행연합회장의 모두발언으로 대체하겠다"고만 했습니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소상공인 금융 부담을 경감하고자 맞춤형 금융 지원 방안을 마련해서 이달 중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민생 지원 요구가 일부 있었음을 예상할 수 있는 발언입니다.
9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민생 경제 및 은행권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국민의힘·은행권 현장 간담회’에 참석한 국민의힘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주요 은행장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사회 환원 압박 커질 듯
은행들은 대놓고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불편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생 경제 안정을 위해 은행권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부 의원은 행사장이 참석자와 취재진으로 붐비는 것을 보고 "은행권이 돈이 많기는 많나 보다"면서 뼈 있는 인사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의힘이 창출한 이번 정권에서도 그간 대통령과 금융당국 수장들은 은행권의 이자 장사·돈 잔치를 비판하면서 '상생금융'을 압박해왔습니다. 고금리 시기에 도래하면서 국민들은 이자 부담에 허덕이는데 금융사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이자장사'로 돈 잔치를 한다는 비난입니다. 이는 금리정책 개입과 조 단위의 상생금융 마련 압박의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은행권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추가적인 '상생금융' 요구입니다. 은행권은 올해부터 향후 3년간 매년 최대 7000억원을 지원하는 총 2조1000억원 규모의 '상생금융 시즌2'를 지난해 말 마련한 바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이날 간담회에서 취약층 금융 지원 요구는 나오지 않았지만, 앞으로 기존보다 지원을 늘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습니다.
과거 민주당이 추진했던 횡재세(초과이익 환수)가 다시 이슈화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민주당은 지난해 10월 가산금리 산정 기준을 은행법에 명시하고 가산금리 세부 항목을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을 '5대 국민 민생 법안'으로 선정하고 우선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금융권 안팎에서 과도한 경영 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해당 항목을 삭제하고 대출금리에 법정출연금을 전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새로 발의했습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어도 은행 옥죄기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조기 대선 국면으로 흐르면서 정치권의 은행장 호출이 잦아졌다. 지난 1월20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민생 경제 회복을 위한 현장간담회에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을 비롯한 은행장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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