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19일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 국제공항에 나와 푸틴 대통령을 환송하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올해 러시아 방문이 확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그 정확한 시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지난 27일(현지시간)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러시아 방문을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고 공개했는데요. 러시아 관영 리아 노보스티·타스 통신에 따르면 루덴코 차관은 "우리는 항상 (김 위원장의) 방문에 대비하고 있다"며 "러시아와 북한의 상호 방문과 관련한 모든 이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2주 전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 문제를 포함한 논의를 했다"며 "북한과의 전략적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방북에 대해서도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지난해 6월 평양 간 푸틴…김정은 '모스크바' 초청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평양을 방문해 북한과 과거 냉전기 군사동맹을 복원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하면서 김 위원장을 모스크바로 초청한 바 있습니다.
루덴코 차관은 앞서 지난 14~18일 방북해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 외무상, 김정규 부상과 회담했는데요. 이 회담 내용에 대해 러시아 외무성은 "고위급 및 최고위급 정치 접촉 일정을 포함해 양자 관계 발전의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고위급 및 최고위급 정치 접촉 일정'이 바로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방북과 김 위원장의 방러 관련 내용인 것으로 보입니다.
루덴코 차관에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세르게이 쇼이구 국가안보회의 서기도 지난 21일 당일치기로 방북해 김 위원장을 만났는데요. 이 방문도 김 위원장의 방러와 관련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루덴코 차관은 29일 <타스통신>에 "오는 5월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에 여러 아시아 국가 지도자들을 초대했다"며 "누가 참석할지는 대통령 행정실에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열병식에 참가한다는 사실은 알려진 바 있다면서 "다른 많은 사람도 초대받았으며 그들의 이름은 조금 후에 알려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1945년 5월9일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2차 대전 전승절은 러시아 최대 국경일로 꼽히는데요. 러시아는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규모를 축소했지만, 올해는 80주년 정주년을 맞아 성대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도 전승절에 러시아를 방문하기로 했으며, 러시아는 독립국가연합(CIS),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가입국과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등 러시아에 우호적인 국가 지도자들을 전승절 열병식 행사에 초대한 바 있습니다.
루덴코 차관이 27일 "김정은 위원장 올해 방러 준비 중"이라고 밝힌 데 이어 이날 이같이 공개하면서, 김 위원장이 5월 9일에 모스크바를 방문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5~26일 새로 개발·생산하고 있는 무인항공기술연합체와 탐지전자전연구집단의 국방과학연구사업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7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해 6월 군사동맹 복원을 계기로 급속도로 밀착하고 있는데요. 우크라이나 전쟁에 러시아를 지원해 온 북한은 지난해 말에 사단 규모의 전투병을 파견했으며,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러시아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서 식량과 에너지 분야는 물론 군사 분야에서도 북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새로 개발·생산 하고 있다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김 위원장이 직접 참관하는 모습과 함께 27일 공개했는데요. 이 역시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러시아제 일류신(IL)-76 수송기에 레이돔(radome)을 올린 형태인 이 항공기에 대해, 합동참모본부는 "내부 장치와 부품들은 러시아와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항공기 기종 자체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던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처럼 김 위원장의 연내 방문은 기정사실로 분석되고 있으나, 그 시점과 장소가 5월 9일 모스크바 전승절 행사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자외교 무대 꺼린 북 지도자들…장거리 비행기 없어 기차 선호
선대 김일성 주석은 소련(러시아),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을 방문할 때 50년대 초를 제외하면 대부분 다자외교 무대가 아니라 단독 방문이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물론이고 2012년 집권 이후 중국, 러시아, 베트남을 방문한 김 위원장도 모두 단독으로 방문했습니다. 이는 북한이 다자회담의 경우 단독방문에 비해 경호상 허점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각국 정상이 참석함에 따라 N분의 1이 되면서 '절대 지도자'의 위상 약화를 우려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김 위원장은 외국을 방문하면서 대부분 기차를 이용해 상대적으로 가까운 지역을 찾았습니다. 특히 푸틴 대통령과 처음 만난 2019년 러시아 방문지는 모스크바가 아니라 북한과 가까운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였고, 2023년에도 역시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했습니다. 러시아와 북한은 2015년에도 김 위원장의 전승절 70주년 기념식 참석을 논의했으나, 막판에 북한이 불참을 통보해 무산된 바 있습니다.
2018년 6월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은 북한에 싱가포르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장거리 비행기가 없어 중국 비행기를 빌려 탔으나,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에서는 또 중국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해 평양에서 하노이까지 4500km거리를 4박 5일간 기차로 이동한 바 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제까지 북한의 모습으로 볼 때 김 위원장이 5월 전승절보다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시점에 러시아를 방문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고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5월 9일 모스크바 전승절에 참석한다면, 다자외교 참석이라는 북한 외교의 새로운 모습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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