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씨가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 입구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만을 남겨둔 윤석열씨가 '승복 메시지' 없이 장기간 침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탄핵심판 최종 변론이 끝난 지난달 25일 이후 20일 동안 잠행을 이어가면서 끝까지 내란 사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데요. 헌재의 탄핵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당 기간의 선고 후유증을 겪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계속된 내란 사태가 헌재 선고 이후에도 지속되는 모양새입니다.
윤, 최종변론 끝난 이후…20일간 '침묵'
윤씨는 지난 8일 석방된 후 17일까지 침묵을 지키며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윤씨의 침묵은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가 헌재 선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섣부른 여론전에 나섰다가 자칫 헌재의 재판관들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대통령실도 헌재 결정까진 말을 아끼는 분위기입니다. 현재로선 윤씨가 탄핵 선고가 나오기 전까지 침묵을 유지하며 여론의 반응을 살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헌재의 탄핵 선고 이후에도 양 진영의 대립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이날도 광화문과 헌재를 중심으로 찬탄파(탄핵 찬성)와 반탄파(탄핵 반대)의 갈등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여기에 정치권에서도 선고를 앞두고 경쟁적으로 거리로 나가고 있는데요. 국민의힘 의원들은 헌재 앞에서 릴레이 24시간 시위를 7일째 이어갔고, 민주당은 6일째 국회에서 광화문까지 도보 행진을 벌였습니다. 야권 내 일부 의원들은 단식 농성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탄핵 정국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날 오전 광주 북구 운암동 한 사거리 인도에서 윤씨의 파면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던 민주당 소속 60대 당원이 갑자기 쓰러져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번 일을 두고 페이스북에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을 국민께서 직접 하다가 벌어진 일"이라며 사과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분열이 가속화되면서 향후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려도 이를 반대하는 진영의 반발이 상당히 거셀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는데요. 헌재의 선고를 계기로 양 진영의 갈등이 수습되는 것이 아니라 더 심화돼 후유증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탄핵안이 인용될 경우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 진영 지지자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선고 후유증이 일파만파 확대될 것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반면 탄핵안이 기각돼 윤씨가 대통령직에 복귀하면 탄핵안을 찬성했던 진보 진영 지지자들의 불복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난 2017년 박근혜씨 때보다 찬탄파와 반탄파 간의 충돌이 더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선고 이후 심각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과거 박씨 탄핵 선고 때 찬반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선고가 있던 날 헌재 일대 충돌로 집회 참석자 4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는데요. 박씨 탄핵을 놓고 찬반 세력이 수십 일 동안 충돌한 끝에 4명이나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진 겁니다.
윤석열씨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1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의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여권 일각 '승복' 촉구했지만…당 지도부 "용산서 판단"
이에 따라 윤씨가 현직 대통령으로서 헌재 선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승복의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근 여야 지도부가 각각 승복 입장을 내고 있지만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광장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누구보다도 윤씨 본인의 승복 메시지가 가장 필요하다는 겁니다.
여권 내부에서도 윤씨의 승복 메시지를 촉구했습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헌재에서 기각 결정이 나오면 복귀하는 것이고, 인용 결정이 나오면 그 즉시 승복의 메시지를 내주는 것이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도리"라고 강조했습니다. 김근식 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 역시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승복 메시지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냉정하게, 안타깝게 분석되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희망과 기대를 갖고 부탁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런 요구에 선을 긋는 모습입니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비대위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승복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냐'는 질문에 "없었다"며 "용산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윤씨와 이재명 대표가 헌재 선고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대표의 경우, 앞서 지난 12일 <채널A>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헌재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지만 다시 한 번 지지자들을 자제시킬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이날 <뉴스토마토>와 한 통화에서 "한국 정치에 책임이 있는 두 사람(윤석열·이재명)이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승복 메시지를 내고 자제시킨다면 여야가 공동으로 승복 메시지를 낼 필요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두 사람이 헌재의 결정 이후 다시 치유와 회복으로 돌아가 정치를 정상화하자는 메시지를 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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