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토마토 김하늬 통신원] 최악의 '에그플레이션'(계란+인플레이션 합성어)이 미국 경제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미국 현지 마트 내 진열장에 계란이 텅 비어 있기가 일쑤고, 코스트코에는 오픈 시간 1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코스트코의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바로 계란 코너로 달려가는데요. 오픈런을 놓치면 그날 계란을 사기 어려워집니다. 물론 줄을 섰지만 아예 계란 자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몇 개월째 지속되고 있는데요. 계란값 폭등은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를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에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면서 물가에 대한 국민 불만도 다시 커졌습니다. 관세 전쟁에만 몰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악몽'에 직면한 셈입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마이애미의 한 슈퍼마켓에 계란 구매를 제한하는 표지판이 표시되어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유권자 54% "트럼프 경제정책, 지지하지 않는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관세 전쟁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우려가 확대된 상황에서 지금까지 나온 경제지표들은 관세정책의 부작용을 아직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소비자들은 경제정책과 물가 관리에 불만을 가지고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16일(현지시간) <NBC 방송>이 여론조사 기관 하트리서치와 퍼블릭오피니언스트레티지스에 의뢰해 지난 7∼11일 미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오차범위 ±3.1%포인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44%로 과반에 못 미쳤습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4%였습니다.
특히 인플레이션 대응에 대해 응답자의 55%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지지한다는 응답은 42%에 불과했습니다. <NBC>는 "자사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 운영에서 (집권 1기를 포함해) 과반의 반대를 받은 적이 없었다"며 "트럼프의 관세정책으로 혼란스러운 시장 및 산업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소비심리 2년 4개월 만에 '뚝'…기대 '인플레이션 5%' 육박
무엇보다 소비심리가 2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트럼프의 관세정책 여파로 향후 인플레이션 기대치도 3개월 연속 급등세를 나타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시간대가 지난 14일(현지시간) 발표한 3월 소비자심리지수가 57.9를 나타냈다고 밝혔습니다. 2월 지수인 64.7보다 크게 낮아진 데다 2022년 11월 이후 2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미국 소비자들은 향후 물가상승률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향후 1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4.9%로 2월 대비 0.6% 포인트 올랐는데요. 이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상승했던 지난 2022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1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지난해 12월 2.8%에서 올해 1월 3.3%, 2월 4.3%, 3월 4.9%로 빠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조안 슈 미시간대 디렉터는 "경제정책의 잦은 변동은 개인의 정책 선호도와 관계없이 소비자들의 미래 계획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0.5%포인트 이상의 이례적으로 큰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3개월 연속 이어졌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계란값, 1년 새 60% 폭등…"관세가 인플레이션 더욱 부추겨"
관세정책의 물가지표가 아직 반영되기도 전에 트럼프의 발목을 잡은 '계란값'은 1년 새 60%가 상승했습니다. 미 노동부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2월 계란값은 전월 대비 10.4% 상승했습니다. 10년 만에 가장 큰 월간 달걀 가격 상승률인 지난 1월(15%) 보다는 약간 낮은 수치입니다. A 등급 계란 12알의 평균 소매 가격은 5.9달러(약 8600원) 입니다. 이는 사상 최고치이면서 지난해 2월 대비 2배 이상 비싼 가격입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같은 개수의 달걀이 10달러(1만4500원)를 넘는 사례도 나오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작년 가을 대선 캠페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바이든 행정부로 돌리고 비난하며 물가를 낮추겠다고 다짐했다"며 "그러나 계란을 포함한 필수 소비재의 가파른 상승은 그의 관세정책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더욱 부추기면서 이러한 전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끔찍하다"…기본부터 사치품까지 지출 약세 징후 곳곳
실제 관세 전쟁 여파가 물가에 본격적으로 반영되면 물가 불안심리가 일파만파 확대될 우려가 큽니다. 판테온 거시경제연구소 사무엘 톰스는 "끔찍하다"며 "경제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주가가 급락하면서 소비자들의 신뢰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경제에 대한 추정치를 낮추면서 소비자 심리 하락이 강력한 경고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예상하면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고 기업은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기본부터 사치품까지 모든 것에 대한 지출에서 약세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씨티의 미국 신용카드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의 소매업 카테고리에서 지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까지 의류와 운동화에 대한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 22% 급감했습니다. 타겟, 풋락커, 로우스 등 소매업체들은 모두 2월에 수요가 약세를 보였다고 보고했습니다. 타겟의 최고경영자(CEO)인 브라이언 코넬은 "소비자들이 관세의 잠재적 영향과 관세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전체 생활비와 관세에 대한 불확실성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코스트코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게리 밀러칩은 "소비자들의 수요가 저가 단백질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지출처에 대해 '매우 선택적'"이라며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더 심해질 경우 소비자들이 더 까다로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뉴욕=김하늬 통신원 hani487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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