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NXT)가 문을 연 지 이틀째인 5일, 거래 가능 종목 일부에서 이상 현상이 포착됐습니다. 매도호가보다 몇 단계 더 높은 매수호가 주문이 나온 것입니다. 매도자가 원하는 가격보다 더 비싸게 사겠다는 매수주문과, 더 싸게 팔겠다는 매도주문이 버젓이 공존하는 거래 상황이 몇 시간 동안 지속됐습니다. 한국거래소(KRX) 단일 체제에선 볼 수 없던 장면입니다.
“NXT로 더 비싸게 사겠습니다”
NXT 출범 이틀째인 5일 오전 11시경, NXT 초기 거래 가능 10종목 중 하나인 제일기획 주식 거래 화면에서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매도호가 중 가장 낮은 가격이 매수호가보다 더 낮게 형성된 것입니다. 증권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갈무리한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오전 11시3분 현재 매도호가 중 최저가 주문은 1만7290원에 나온 170주였는데 이때 매수주문은 1만7310원에 올라온 110주였습니다. 즉 매도호가가 매수호가보다 낮은 겁니다.
1만7290원에 제일기획 보유주식을 매도하겠다며 주문을 낸 사람은 본인이 원한 가격보다 비싼 1만7310원에 바로 주식을 팔 수 있는 상황입니다. 반대로 신규 매수자는 1만7290원에 주식을 바로 매수할 수 있는데도 그보다 높은 1만7310원에 사겠다며 주문을 올려놓은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이 상황이 유지된 것입니다.
가격 역전은 이후에도 계속 유지돼 이로부터 몇 분이 지난 11시7분엔 매도호가 1만7270원, 매수호가 1만7300원으로 매수·매도호가 역전 폭이 더 벌어졌습니다.
매도호가보다 높은 매수호가, 매수호가보다 낮은 매도호가라는 이상 현상은 반짝하고 나타났다 사라진 해프닝이 아닙니다. 기자가 처음 발견한 후 지켜본 한 시간 넘게 지속됐으며, 역전 폭은 적게는 호가 1단계, 즉 10원 차이에서 많이는 50원까지 벌어졌습니다.
같은 시간 다른 NXT 거래 가능 종목 중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한 결과 컴투스에서 호가가 한 단계 정도 역전된 것이 발견됐습니다. 나머지 8개 종목들은 매도호가와 매수호가가 같은 경우는 있지만 제일기획처럼 역전되거나 그 갭이 크게 벌어지는 현상은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5일 오전 11시3분 제일기획 현재가 화면. 통합화면(좌)에서 보면 매도호가는 1만7290원, 매수호가는 1만7310원으로 매수호가가 더 높다. 이를 KRX 시세(중)와 NXT 시세(우)로 구분해서 보면 매수·매도호가 역전 현상이 벌어진 이유를 알 수 있다.(사진=삼성증권 MTS 화면 갈무리)
5일 오전 11시7분. 제일기획 매수·매도호가 차이가 더욱 벌어졌다.(사진=삼성증권 MTS 화면 갈무리)
차익거래 가능해도 실익 없어
이같은 호가 역전은 복수의 거래소가 등장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한국거래소(KRX)에서 제일기획 주식 주문이 나온 가격과 NXT에 접수된 주문 가격이 다른 상황에서, 양측의 주문을 한 화면(통합시세)에 모아서 보여주니 매도호가보다 비싼 매수호가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당시 제일기획 현재가 화면을 통합시세가 아닌 각 거래소의 시세로 바꿔서 보면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매도호가보다 높은 매수호가는 NXT에서 나온 주문이었습니다. 매수호가보다 낮은 매도호가 주문은 KRX에서 접수됐습니다.<사진 참조>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더 싸게 팔겠다는 주식을 매수해서 곧바로 더 비싸게 사겠다는 매수 대기자에게 매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실제로 기자가 시험 삼아 몇 차례 반복해서 주식을 매수한 뒤 그 즉시 더 높게 올라와 있는 매수주문에 주식을 매도하자 모두 거래가 정상 체결됐습니다. 이렇게 매매한 결과 적게는 주당 10원에서 많게는 40원까지 차익이 발생했습니다.
물론 스켈핑(초단타 매매) 수준의 거래로 생긴 실익은 거의 없습니다. 주식 매도 시 거래금액의 0.15%가 세금(코스피 농특세, 코스닥 거래세)으로 공제되는데, 매매 차익이 0.05~0.23% 수준이어서 남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 가격 차이로는 무위험 차익거래가 불가능합니다.
다만 해당 주식 보유자이거나 관심이 있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더 나은 조건으로 주식을 매수하거나 보유주식을 매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매수·매도호가 역전 상황에서 주식 거래를 실행해본 내역(매매순서는 아래에서 위로). 여러번 사고팔 수 있을 정도로 역전 상태가 오랜 시간 지속됐다. 매매별로 1주당 10~50원의 차익이 생겼으나 세금 등 비용 감안시 실익은 없다.(사진=미래에셋증권 HTS 화면 갈무리)
SOR 놔두고 NXT로 주문해서
그럼에도 한 가지 의혹은 남습니다. 이처럼 매수·매도호가가 역전된 채로 오랜 시간 유지된 것이 정상적이진 않기 때문입니다.
KRX와 NXT 양측 거래소에 주문이 따로 접수됐다고 해도 증권사들은 시세창에서 이를 한 화면에 함께 보여주는데, 이걸 보고도 굳이 더 비싸게 사겠다는 주문이 꾸준히 나오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또한 매수 대기자 또는 매도 대기자 입장에서도 KRX나 NXT 중 한 곳을 지정해 주문할 필요 없이 통합주문(SOR, 스마트주문시스템)을 하면 가장 유리한 가격에 주식 거래가 체결되는데, 증권사 주문화면의 기본값으로 설정돼 있는 SOR 주문 대신 일부러 거래소를 특정해서 주문해 이런 현상이 빚어진 것도 의아합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이제 시장에 막 참여한 NXT 측에서 NXT 시장의 거래 활성화를 목적으로 또는 투자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이런 것 아니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NXT 관계자는 “복수 거래소 체제가 돼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해당 주문은 우리와는 상관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NXT 측에 이같은 질의를 한 뒤 제일기획 시세에서 매수·매도호가 역전 현상이 사라졌고 오후장에서는 한 단계 정도 잠깐 역전됐다가 돌아오는 정도로 완화됐습니다.
이처럼 의도가 있든 우연이든 양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종목은 호가 역전 현상이 벌어질 수 있고, 많지 않은 수량의 주문에 의해서도 주가가 움직일 수 있어 투자자가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