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헌법재판소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탄핵을 기각했습니다. 이진숙 위원장은 헌재의 기각 결정 이후 즉시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5개월 넘게 1인체제를 유지하며 정상 업무가 불가했던 방통위는 위원장 복귀와 함께 2인체제를 갖추며 안건 심의·의결이 가능해졌습니다. 다만 헌재에서 탄핵 인용과 기각 의견이 4대4로 나뉜 점을 볼 때, 2인체제 논란에 마침표 찍은 것은 아니라는 데 무게가 실립니다. 이 때문에 방통위를 둘러싸고 향후 정치권 내 갈등 격화가 불가피해 보이는데요. 일방적인 결정권을 휘두르기보다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를 복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헌재는 23일 이진숙 방통위원장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기각했습니다. 8인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탄핵 인용 의견이 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계선 재판관 4인, 기각 의견이 김형두·정형식·김복형·조한창 재판관 등 4인으로 팽팽하게 나뉘었습니다. 헌재가 탄핵 결정을 내리려면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탄핵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탄핵 심판의 쟁점은 이 위원장이 방통위 5인 중 2인의 방통위원만 임명된 상황에서 KBS와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선임안을 의결한 행위가 방통위법 위반인지 여부였습니다. 2인체제 의결에 대한 위법성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방통위법 제13조 2항은 '위원회의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기재돼 있습니다.
인용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2인의 위원만이 재적한 상태에서는 방통위가 독임제 기관처럼 운영될 위험이 있다",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반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통해 피청구인에게 간접적으로 부여된 국민의 신임을 박탈해야 할 정도로 중대하다"고 했습니다.
반면 기각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재적위원은 문제 되는 의결의 시점에 방통위에 적을 두고 있는 위원을 의미한다"며 "방통위의 재적 위원은 피청구인(이 위원장)과 김태규 2인뿐이었고, 재적위원 전원의 출석과 찬성으로 이뤄진 의결이 방통위법상의 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은 법규범의 문리적 한계를 넘는 해석"이라고 했습니다.
탄핵이 기각된 이후 이 위원장은 곧바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해 간부회의를 소집하는 등 업무를 재개했습니다. 이 위원장은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지상파 재허가와 해외 빅테크 과징금 부과를 꼽았습니다. 지상파 재허가는 KBS1TV와 MBC를 포함해 국내 12개 사업자 146개 채널이 대상입니다. 지난해 말 재허가 여부 결정이 나와야 했지만, 1인체제에서 의결이 중단됐습니다. 구글과 애플의 인앱결제 강제에 대한 과징금 부과도 지체되고 있습니다. 지난 2023년 10월 인앱결제 강제화를 문제 삼아 구글에 475억원, 애플에 20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지만, 최종 의결을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위원장은 기각 선고 후 취재진 앞에서 "앞으로 직무에 복귀해서도 이런 기각 결정을 내려주신 국민을 생각하면서 그것이 규제든 정책이든 명심하고 직무 수행하겠다"며 "방송사 재허가 재승인이 남아있고 기업 과징금 부과 이슈도 남아있는데, 직무에 복귀해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많이 지원해주시기 부탁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방통위원장 탄핵심판사건 선고기일에 출석해 있다. (사진=뉴시스)
방통위 2인체제 복귀로 지난해 7월31일을 끝으로 멈춰있던 전체회의 재개가 가능해졌지만, 주요 안건의 심의 의결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탄핵은 기각됐지만, 헌법재판관 의견이 절반으로 나뉘었던 점을 고려하면, 헌재가 2인체제 의결 위법성을 해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유입니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기각 판결이 '방통위 2인체제가 위법이다, 아니다'에 대한 결정으로 볼 수는 없다"며 "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방문진 이사 선임 등 2인 체제 의결이 위법하다는 여타 소송에 대해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방통위를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각도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국민의힘은 이번 탄핵 기각 결정에 대해 "당연한 결정"이라며 민주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헌재 판결은 파면을 기각한 것이지 방송장악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난해 공영방송 이사 선임과 같이 2인만으로 불법적인 직무에 나선다면 다시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도 "헌재의 숙고를 존중하지만, 탄핵 기각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방통위가 사회적, 정치적으로 휘둘리지 않도록 중심 잡기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전 방통위 상임위원인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는 "헌법 재판관의 의견이 갈린 부분을 잘 생각해야 한다"며 "갈등을 유발시키기보다 화합해 방통위의 본래 설립 취지인 합의제를 복원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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