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이한우 신임 대표이사 체제로 재편한 현대건설이 1조2000억원대 적자라는 뼈 아픈 성적표를 받아들였습니다. 길어지는 건설·부동산 시장 침체에 고환율과 원자잿값 상승 여파에 23년만에 기록한 적자전환입니다. 또 상반기 최대 관심 정비사업지로 불리는 한남4구역 재개발 수주전에서도 삼성물산에게 큰 격차로 패배했는데요. 6년 연속 도시정비사업 수주 왕좌 자리를 지켜 온 현대건설의 자존심에도 상당한 생채기가 났습니다.
23일 현대건설의 2024년 연간 연결 실적 잠정 공시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지난해 누적 매출 32조6944억원, 신규 수주 30조5281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연간 누적 매출은 전년 대비 10.3% 증가했으며, 신규 수주도 연간 목표액을 소폭 초과 달성했습니다.
현대건설 계동 사옥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반면 지난해 영업 손실은 1조2209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현대건설이 경영 실적 적자를 기록한 것은 무려 23년 만입니다. 당기 순손실 역시 7364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습니다. 늘어난 매출 대비 수익성이 크게 악화하며 시장 컨센서스를 크게 밑돌았습니다.
이 같은 적자 배경에는 환율과 원자잿값 상승,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일부 해외 대형 플랜트 사업장에서 수익성 악화가 존재합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대내외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고환율·원자재가 상승 기조가 지속 중"이라며 "연결 자회사의 해외 일부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일시적 비용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현대엔지니어링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정유공장과 사우디아라비아 자푸라 가스전 사업장에서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현장에서는 공기 연장과 관련한 원가 상승분과 발주처 협상 지연, 기존 공장 개보수 등 일부 역무에 대한 발주처 일정변경 요청에 따른 차질 등이 생겼다"며 "사우디 현장에서는 상세 설계 완료에 따른 물량 증가와 공기 준수를 위한 공정 촉진 비용 등이 발생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사업구조의 원천적인 문제가 아닌 특정 프로젝트들에 국한된 일회성 원가 반영"이라며 "발주처와 적극 협상해 손실폭을 최소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현대건설 측은 향후 수익성 개선을 위해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위한 내부 프로세스를 재점검하고 수익성 위주 프로젝트를 선별해 수주 추진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상반기 최대 정비사업 '한남4구역' 쟁탈전서 패배
현대건설은 연초 삼성물산과 맞대결을 펼친 한남4구역 재개발 시공사 선정에서도 패배의 쓴 맛을 봤습니다. 양 사의 맞대결은 △시공능력평가 1·2위 △17년 만의 맞대결 △서울대 건축학과 출신 선후배 CEO 경쟁 등 다양한 관전 포인트로 업계 안팎의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특히 지난 3일 공식 선임된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이사는 취임 후 첫 공식일정으로 한남4구역 현장 방문을 택하는 등 해당 사업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했습니다. 30여 년 간 현대건설에 몸 담은 이 대표는 2022년 말부터 전략기획사업부장과 주택사업본부장 등 '주택통'으로서 면모를 보였는데요. 지난해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 사업 수주를 위한 포스코이앤씨와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는데 이 대표의 역할이 상당히 컸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서울 용산구 한남4구역 재개발 사업 현장을 방문했던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이사의 모습. (사진=현대건설)
이 때문에 한남4구역 시공권 획득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는데, 당초 치열한 맞대결을 펼칠 것이라는 예상이 무색하게 조합원 투표에서 340표(삼성물산 675표·현대건설 335표)라는 큰 격차로 패배했습니다.
현대건설의 예상 밖의 완패를 두고 업계에서는 한강 조망권 확보, 공사비 상승에 따른 공기 지연의 우려 등이 조합원 표심에 반영됐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한남4구역 한 조합원은 "현대건설 제안보다 삼성물산 제안이 한강 조망 확보에 유리했던 면이 있었다"며 "현대건설 설계안은 자신들이 수주한 인근 3구역까지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때문에 삼성물산 측 제안이 조합원의 더 많은 표를 얻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조합원은 "그 동안 현대건설이 시공하는 몇몇 사업장에서 공사 중단하는 사례가 있었는데, 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현대건설은 올해 서울 내 주요 정비사업 시공권 획득을 통해 실적 개선에 나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오는 3월로 예정된 개포주공 6·7단지 재건축을 비롯해 잠실우성 1·2·3차, 여의도 대교아파트, 성수전략정비 구역 등 굵직한 사업장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현대건설 최후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재건축 사업도 연내 개막할 것이 유력합니다. 여기에 '7년 연속' 도시정비사업 수주 1위 수성도 달성 목표 중 하나입니다.
최악 실적 속 주가는 상승…'빅배스' 전략 일환
이처럼 안팎의 위기로 시달리고 있음에도 현대건설 주가는 상종가를 달리는 반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건설 주가는 지난 22일 장 마감 기준 8%가 오르는 상승세를 기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전형적인 '빅배스(Big Bath)'라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CEO가 바뀌는 등 기업 내 변곡점이 발생할 때 그 동안 쌓인 적자 등을 털고 가자는 '빅배스' 전략이 유효한 경우가 있다"며 "현대건설도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의 손실을 선반영한 만큼 국내와 해외를 불문하고 무분별한 수주를 지양하고 수익성 중심으로 사업에 접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습니다.
현대건설에 대한 증권업계의 향후 전망도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해외사업부문 손실분을 선반영 한 만큼 앞으로의 우려는 줄어들 것"이라며 "회사가 제시하는 영업이익 가이던스 1조2000억원(현대건설 별도 4400억원, 현대엔지니어링 6300억원) 수준은 달성 가능한 숫자라고 본다. 이에 주가 상승 여력도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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