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정책대출, 국토부-금융당국 엇박자에 시장 혼선
2025-01-16 14:43:06 2025-01-17 08:14:58
 
[뉴스토마토 문성주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은행 정책자금대출 급증세를 지적하면서 시장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주거 안정을 목표로 하는 국토교통부는 정책대출 공급을 이어간다는 방침인 반면,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관리에 방점을 두면서 정책이 충돌하는 모양새입니다. 
 
정책대출, 가계부채 급증 요인 지목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지난 14일 임원회의에서 은행 정책자금대출이 급증하면서 가계대출 내 쏠림 현상을 유발하고 은행의 수익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원장은 "은행 자체 재원 정책자금대출이 2022년 이후 180.8% 증가하는 등 가계대출 내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은행의 기회비용 등을 감안할 때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자산 쏠림 리스크 및 건전성 악화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책대출을 줄여 가계부채 증가세 및 은행의 수익성 악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경고한 것인데요. 지난해 정책대출이 급속도로 늘며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전체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속도 조절 필요성을 강조한 셈입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가계신용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가계대출 총액은 1795조8092억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액(주담대)은 1112조1295억원으로 전체의 61.9%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주담대 중 정책대출은 230조3269억원으로 20.71%에 달했습니다.
 
정책대출은 은행 자체 재원으로 공급돼 취급 후 일정 한도 내에서 기금이 일부 이차 보전 해줍니다. 은행의 금리 역마진을 정부가 일부 메워주는 구조입니다. 그러다보니 차주 입장에선 요건만 된다면 정책대출이 일반대출보다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정책대출이 가계부채 폭증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것 역시 사실입니다. 작년 6월~7월 가계대출이 폭증하자 금융당국은 디딤돌대출 등 주택구입 정책대출 금리를 최대 0.4%포인트 올리는 등 수요 조절에 나선 바 있습니다.
 
다만 정부의 기금 재원이 조기 소진되면서 은행들은 그간 역마진을 고스란히 떠안아왔습니다. 작년에도 2월부터 정부의 기금 재원이 조기 소진돼 은행은 자체 재원으로 정책대출을 해왔고 올해도 벌써 일부 은행 영업점에서는 기금 재원이 바닥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은행 자체 재원인 디딤돌·버팀목대출은 은행의 여신 잔액에 포함되기 때문에 정책성 대출인데도 위험가중치에 반영돼 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지난해 말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주요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34조1350억원으로, 직전 해인 2023년 말과 비교하면 1년 새 41조7256억원 늘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4일 임원회의에서 은행권 정책자금대출이 급증하면서 가계대출 내 쏠림 현상을 유발하고 은행의 수익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1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확대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사진= 뉴시스)
 
은행권, 정책대출 현장 혼선 우려
 
그간 국토부는 주거 안정을 위해 지속적인 정책대출 공급을 주장해왔는데, 갑자기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다보니 은행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정책대출을 더이상 취급하지 말라는 뜻인지 의도를 파악하고 있다"며 "금융당국의 방향에 맞춰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국토교통부 눈치에 실수요자가 이용하는 상품 판매를 거부할 수도 없고 금융당국 수장이 공개적으로 판매를 자제하라고 한 상황이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아직까지 올해 정책대출 상품 공급 규모를 확정하지는 못했습니다. 정책성대출 공급 규모 발표는 통상 연초 이뤄졌는데 부처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협의가 길어진 영향입니다. 
 
정책대출이 작년과 유사한 수준인 55조원 안팎으로 결정될 경우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와는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위는 지난 8일 '2025년 경제1분야 주요 현안 해법회의'에서 가계대출 증가세를 올해 명목성장률 이내로 억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를 규모로 환산하면 약 60조원 정도입니다. 은행은 정책대출 상환액 등을 감안하면 자체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을 40조원 수준으로 묶어야 합니다.
 
일각에선 이 원장의 발언이 은행 건전성 당부를 위한 통상적인 발언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수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의례적인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갑작스럽게 가계대출을 중단하라는 정도의 발언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금융당국은 주택 관련 정책대출을 조이자는 입장인 반면 국토교통부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엇박자를 내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은행의 대출 안내문 (사진= 뉴시스)
 
문성주 기자 moonsj709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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