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2025년 시장의 화두는 단연 환율입니다. 상반기, 적어도 1분기 중엔 환율이 경제와 금융시장의 흐름을 지배할 전망입니다. 원달러환율은 이미 금융기관들의 예측치를 넘어섰고 상방이 열려 있는 상태입니다. 다만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는 한 일부에서 우려하는 외환위기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지난 30일 서울외국환시장에서 원달러환율은 1472.50원을 기록하며 한 해를 마무리했습니다. 27일 장중 한때 1487.60원까지 치솟으며 간담을 서늘케 했던 환율은 여전히 1500원을 목전에 두고 등락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원달러환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 상승과 함께 ‘트럼프 2기’ 개막에 대한 우려로 9월 하순부터 불이 붙어 기어코 1400원 고지를 밟더니, 12월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 의결로 상승 폭을 키웠습니다. 게다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선임을 거부하고, 최상목 경제부총리마저 그에 동조하는 회견을 할 때마다 환율이 뛰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할 책임자가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미국 금리 덜 내리고 한국 더 내려 환율 자극
이제 외환시장은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난 11월 말 증권사들이 발간한 2025년 증시 전망에 담았던 환율은 2025년이 되기도 전에 예상 범위를 넘었습니다. 일부에선 1500원 돌파 가능성을 거론하지만, 추가로 공식 전망치를 내놓는 것이 부담스러울 만큼 상단을 예측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영역에 들어섰습니다.
특히 외환시장의 출렁임이 커지면서 글로벌 환투기 세력까지 유입됐을 가능성이 커 당장이라도 1500원을 돌파한들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환율 상방을 예측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금리의 방향성입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종료 후 2025년 기준금리 정책에 변화가 있음을 알렸습니다. 점도표를 통해 스몰컷(0.25%포인트 인하) 횟수를 4회에서 2회로 축소한 것입니다. 이 경우 현재 4.50%인 기준금리는 4.00%로 낮아지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와의 금리 차입니다. 현재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3.00%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천문학적 수준으로 풀었던 유동성을 회수하기 위해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한미 간 금리가 역전됐고 그로 인해 달러 유출 압력이 커져 원달러환율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미국이 금리 인하를 시작해 비로소 그 폭이 축소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트럼프의 복귀 소식에 다시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등이 물가를 자극해 금리 하락을 막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시장금리를 대표하는 미국채 금리(10년만기)는 지난 9월 3.63%까지 내려왔다가 27일 현재 4.62%까지 급등했습니다.
게다가 최근 이창용 한은 총재는 경기 하강 속도가 빠르다며 기준금리 추가 인하를 예고했습니다.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물가 상승보다 경제 침체를 막는 것이 시급하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미국은 덜 내리는데 한국이 더 내리면 금리 역전 폭은 더욱 확대돼 원달러환율 추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기업·금융권 자금조달 등 비용 증가 부담
외환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는 선물환포지션 한도를 높이고, 외화 대출규제를 완화하고, 외환당국과 국민연금의 외환스왑을 확대하는 등 5개 수급 방안을 발표했는데요. 빌리는 한도를 키워서라도 일단 달러 수급을 늘릴 수 있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원달러환율은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정국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당장 1~2월에 회사채 발행이 급증할 전망인데 투자심리가 위축되면 크레딧 스프레드가 확대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들은 난관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고환율로 인한 원자재 구입비용 및 물류비 상승, 외화부채 이자 증가 등으로 인한 재무건전성 악화, 그에 따른 중장기적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 등 부담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현재 한은이 외환보유고를 적극 활용해 환율 방어에 나선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이미 쏟아부은 자금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부에선 외환보유고가 바닥나 제2의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12월에 환율 방어에 쓴 돈이 얼마인지는 이달에 수치가 공개돼야 알 수 있지만, 외환보유고엔 아직 여유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적정 외환보유고는 3개월 평균 수입에 단기외채를 더한 값으로 평가합니다. 현재 외환보유고는 이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2022년 3월 이후 감소세라고 해도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대규모 흑자 유지하는 한 위기 없어
무엇보다 외환위기 가능성이 낮은 이유는 경상수지라는 버팀목이 있어서입니다. 과거 외환위기는 경상수지 적자에서 비롯됐습니다.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커지면서 자본유출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경상수지는 △상품수지 △서비스수지 △본원소득수지 △이전소득수지로 구분하는데, 이중 상품수지 흑자 규모가 큽니다. 삼성전자가 위기에 빠졌어도 반도체 수출은 양호합니다. 자동차와 부품 판매도 늘었고 조선업도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유가 등 에너지가격이 안정돼 수입액이 크게 늘지 않은 것도 긍정적입니다. 해외여행이 급증해 서비스수지는 적자인데 월평균 8억달러 규모에 그쳐 월 100억달러를 넘나드는 상품수지 흑자에 비할 정도는 아닙니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 순자산은 월평균 28억달러, 증권투자는 45억달러씩 증가했습니다. 기업의 해외투자와 서학개미의 급증은 자본유출로 이어집니다. 다만 투자원금 외에 주가가 올라 순자산이 증가한 영향도 감안해야 합니다. 또 해외로 나간 돈은 돈을 버는 중입니다. 이 돈은 언젠가 다시 국내로 돌아올 것이란 예상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근본적인 요인인 상품수지 흑자가 버텨주는 한 외환위기에 빠질 위험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한투자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현재 시장의 관심은 미국과 한국 간 내외 금리 차 역전이 심화되는 구간에서 외환시장 충격 여부에 있다”면서 “상반기 중 일시적으로 내외 금리 차가 다시 확대될 수 있지만 국제수지 구조 및 정부 개입으로 극심한 외환시장 불안은 억제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럼에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은 기업들의 환경이 나빠지고 있어 지금과 같은 흑자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도 금리가 오르면 소비가 감소해 우리 수출기업들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무엇보다 정국 불안 해소가 급선무입니다. 금융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불안이 이어지는 한 한국을 바라보는 불안한 시각이 원달러환율에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달러가 전 세계 모든 통화 대비 강세를 보이고 있으나, 한국의 원화는 정치 불안으로 인해 유독 취약한 상황이라서 환투기 공격에 노출되기 십상입니다. 경제가 정치 불안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시장 안정의 선결 과제입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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