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기획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24일 오전 서울 은평구 서울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분단 이후 남한 정치에서 북한 요인은 상수였다. (물론 북한도 그랬다.) 특히 한국전쟁으로 북한이 완전한 적이 되면서 그 파괴력이 더욱 커져. 정국의 향방을 가르는 결정타가 되곤 했다.
당연히 198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주범 김현희 압송 생중계' 사건이 그 대표적 사례다. 당시 전두환정부 국가안전기획부는 '무지개 공작'을 기획해 성사시켰다. 김현희를 대통령 선거 바로 하루 전날인 12월15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서울로 압송한 것이다. 당연히 대선 당일인 다음날 모든 신문이 압송되는 김유미 사진을 포함해 관련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얻어낸 직선제 선거였으나 선거 막판 모든 이슈를 삼켜버리는 블랙홀이 됐다.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가 승리하는데 막판 수훈갑이었다.
1987년 대선 바로 전날 'KAL기 폭파범 김현희 압송'…안기부 '무지개 공작'기획
1992년 대선을 약 두 달 앞둔 10월6일에는 안기부가 "남로당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이라며 '거물 간첩 이선실 및 중부지역당 사건'을 발표했다. 사건 가담자가 95명 중 62명을 구속하고 300여명을 추적중이라고 했다. 이 사건은 국민들의 레드컴플렉스를 크게 자극, 1987년 대선 때 '김현희 압송 생중계' 사건에서는 피해자 중 한 명이었던 김영삼 후보가 노태우에 이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 정권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행위를 적극 '활용'해 결정적 성과를 얻은 셈이다.
1996년 4·11 총선 직전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북한군 무장병력이 들어와 무력시위를 벌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5일부터 3일 연속으로 중대 규모 이상의 북한군이 들어온 것이다. 나중에 밀가루 지급 등을 매개로 남북한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확인되지는 않았고, 당시 김영삼정부는 북한의 정전협력 무력화 기도라고 정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언론이 북풍(한국정치에서 북한 관련 변수, 요인)이라는 용어를 처음 썼고, 이것이 한국 정치에서 '북한 변수'를 상징하는 용어가 됐다. 그 직전에 김영삼 대통령의 집사격 인물인 장학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부정축재로 구속되면서 여당인 신한국당의 패배가 예상됐다. 그러나 '북한군 판문점 무력시위'사건이 호재가 되면서 의석이 줄어들긴 했으나 1당을 지켰고, '장풍-북풍에 울고 웃은 여야'(한겨레 96.4.11)라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북풍은 파괴력이 컸다.
1997년 대선에는 '총풍'사건…북한에 "휴전선에서 총격 가해달라" 요청
급기야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그 유명한 '총풍' 사건이 터졌다.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위해 전 청와대 행정관 등 3명이 베이징에서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인사들을 만나 휴전선에서 총격을 가해달라고 요청한,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희대의 사건'이었다. 북한과 공모해 '북풍'을 일으켜 보겠다는 시도였으나,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서 미수로 끝났다. 만약 이 공모가 성사돼서 대선 직전에 북한군이 판문점에 들어와 총을 쏘아댔다면, 김대중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을까? 2003년 9월 대법원은 청와대 행정관 등 3명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위반으로 유죄를 확정했다.
그러나 북풍이 계속 만능은 아니었다. 총풍사건으로부터 13년이 지난 2010년 3월에 천안함 폭침 사건이 터졌다. 당시 여당 한나라당은 이 사건을 6월 지방선거 최대 이슈로 띄우고 적극 활용했으나 선거는 야당 민주당이 승리했다.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북풍에 국민들이 질려 버려, 더 이상은 북풍이 선거에 주요 변수가 안 된다는 분석이 대세를 이루게 됐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활용에도 야당 민주당 지방선거 승리
이처럼 이 때까지 북풍은 주로 선거를 위해 북한이 한 행위를 증폭·악용하거나 북한과 공모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이전 북풍을 '경천동지할 희대의 사건'이라고 불러왔으나, 앞으로 어쩌면 이 정도는 애교(?) 수준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12·3 내란'의 핵심 기획자로 의심되는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에서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공격을 유도한다', ‘오물풍선’ 등의 메모가 발견됐다. '전시 또는 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라는 비상계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서해 화약고인 NLL에서 먼저 북한을 공격하고 반격을 유도해서 국지전을 획책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유력한 제보라며 김용현 전 장관이 지난 10월에 평양에 무인기를 침투시켰고, 북한의 오물풍선에 대한 원점타격을 지시했으나 김명수 합참의장의 반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공개한 내용과 맞춰보면, 무속인의 방구석 구상이라고만 치부하기 어렵다.
지난 6월 26일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의 한 해병대 포 사격훈련장에서 스파이크 미사일 훈련을 하고 있다. 해병대는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이 전면 중단된 이후 연평도와 백령도에서 포사격 훈련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관련해 지난 6월 NLL 일대 백령도와 연평도에서 벌인 대규모 포사격 훈련과 10월 북한의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 도로 폭파 뒤 피해가 없는데도 중화기로 대응사격을 한 것이 주목받고 있다. 이 때문에, 오죽하면 "김정은의 인내가 한반도를 살렸다'는 어처구니 없는 밈이 유행할 지경이다.
북풍 약발 떨어지니, '북한 반격'유도하는 신형 북풍 구상했나?
만약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구상이 수첩을 벗어나 실행됐다면, 국지전은 물론이고 전면전으로 확전됐을 수도 있다. 이제 북풍이 약발이 떨어졌다고 하니 전혀 차원이 다른 극악한 신형 북풍을 구상한 것일까?
물론 그가 현직이 아닌 데다, 실행 계획 여부도 아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움직여 장성 인사 등에 개입한 흔적이 나왔고, 수첩 내용 중 국회 봉쇄와 주요 인사 체포 등은 실패하기는 했으나 시도된 것은 분명하다.
12·3 내란 사태 전체를 샅샅이 훑어야겠으나, 특히 이 북풍 시도 의혹은 반드시 그 전모를 밝혀내야 할 사안이다. 시민단체들도 이들을 고발했다. 실행에 나섰다면 외환죄 중 일반이적죄(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한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에 해당한다. 외환죄는 준비, 미수도 처벌대상이다. 또 대통령도 내란죄와 함께 불소추 특권에서 제외돼 수사와 재판 모두 가능하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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