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대통령 탄핵 국면이 재현됐다. 박근혜정부의 종말은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최서원)씨가 적법한 절차 없이 대통령의 중요 의사결정과 국정 운영에 개입했다는 의혹으로부터 촉발됐다. 국정 농단 사태 파문이 일파만파 번지면서 국민적 분노가 커지고 야당의 압박과 여당의 분열로 탄핵안이 가결됐다.
당시 최씨 모녀에 특혜대출을 해준 시중은행을 비롯해 국정 농단 의혹과 관련된 인물들의 불법 금융거래와 인사 청탁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금융권도 홍역을 앓았다. 사회부 출입기자들까지 이례적으로 금융사 건물 내 임원실 앞에서 '뻗치기' 취재를 한 기억이 있다. 이를 계기로 건물 내부에 홍보실과 붙어있던 은행권 기자실은 모두 1층 로비 외부로 빠졌던 것으로 안다.
이번 '윤석열 탄핵'은 지난 3일 저녁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심야 비상계엄 선포하면서 촉발됐다. 계엄령 선포와 해제까지 걸린 시간은 총 6시간에 불과했다. 계엄을 건의했다고 밝힌 국방부 장관을 제외한 모든 국무위원은 계엄에 반대했다며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있고, 여당에서 탄핵 찬반을 떠나 계엄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계엄을 기획하고 단행한 특정 인물들에 책임이 쏠리는 만큼 금융권에 직접적인 불똥이 튈 일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금융권은 현 정부가 추진해온 금융정책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은행은 공공재', '돈 장사' 등의 표현을 매년 쏟아내며 금융권을 압박해왔다. 금리 정책 개입과 조 단위의 상생금융 마련 압박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금융권의 마음피 편한 건 아니다. 누가 정권을 잡든 금융 옥죄기는 계속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권 재창출을 벼르고 있는 민주당은 하반기 들어 은행 대출 가산금리 산정 내역을 공개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했었다. 서민 이자 부담 경감을 위해 가산 금리를 법으로 정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 아니었다면 민주당은 이달부터 본격적인 입법 논의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관치금융'이 일상적으로 쓰일 정도로 금융업은 규제산업이다. 각국은 금융당국을 통해 금융업을 감독한다. 금융업은 제조업, 유통업 등 다른 산업과는 달리 경영 방만이 발생하면 그 피해가 외부까지 확산하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개입 수준은 해외와 비교해 과도하다. 금융사들이 '저평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선 밸류업이라는 기업가체 제고를 노력하고 있지만 관치금융과 횡제세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는 힘들어 보인다.
고금리 시기가 도래하고 국민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금융권 공격은 폭풍처럼 물아치는 중이다. 앞으로 벌어질 정권 교체에서 누가 집권 하든 간에 정부의 금융권 압박은 더 고차원이 될 수 있다. 늑대를 피하니 범(호랑이)을 만나는 격이다.
전 정권인 문재인정부 당시 금융권을 압도한 키워드가 '금융 홀대론'이다.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융이 홀대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 해외 순방길에 동행하는 경제인 명단에 금융권 인사가 포함되지 않고, 금융위원장 인선이 늦어지면서 불거진 '홀대론'은 정권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금융홀대냐 아니냐와 무관하게 정부가 금융산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게 오히려 낫겠다는 우스갯소리를 그냥 웃어넘기기는 힘든 요즈음이다.
이종용 금융산업부 선임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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