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모두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바이러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지만, 그렇다고 직접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TV에서 왕관 모양의 바이러스 이미지를 자주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은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다. 바이러스가 존재한다는 우리의 믿음은, 대체로 친구나 가족, 혹은 언론에서 전해 들은 것에 의존한다. 언론사의 기자들조차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존재를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한 사람이 아무도 없고, 모두가 남에게 들은 것을 서로에게 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의 뒤에는 매우 길고 거대한 '믿음의 벨트'가 작동한다. 평소에 우리는 이 벨트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지만, 가끔 그 벨트를 따라가 보며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되짚어보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크기에 대한 믿음의 벨트를 거슬러 올라가면, 현미경을 통해 바이러스를 관찰한 과학자들이 등장할 것이다. 바이러스는 너무나 작아서 우리가 학교에서 접했던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다. 주사전자현미경이나 투과전자현미경 같은 특수한 장비를 이용해야만 한다. 바이러스 전문가가 이러한 현미경을 통해 바이러스를 관찰한 것에서 이 믿음의 벨트는 끝나지 않는다. 그도 현미경을 직접 만들지는 않을 것이므로, 현미경 제조사를 믿어야 한다.
현미경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두세 배로 키워 보여주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을 백만 배로 키워준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 기계가 아무 그림이나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믿을 수 있을까? 현미경으로 유명한 독일의 칼자이스라는 회사가 있다. 19세기 후반 로베르트 코흐는 바로 칼자이스 현미경으로 세균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혔다. 19세기 이 회사의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에른스트 아베라는 현미경의 수학적 원리를 밝힌 과학자이자 회사의 공동 경영자가 등장한다. 독일 예나에 있는 그의 기념비에는 그의 이론에서 도출되는 현미경에 대한 수식이 하나 적혀 있다. 오늘날엔 현미경의 수학적 모형에 대한 그의 이론을 아는 사람들만이 현미경을 만들고 개선할 수 있다.
핵심은 바이러스 전문가 역시도 매우 길고 거대한 믿음의 벨트에 다시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해서 현미경을 믿을 수 있다고 하자. 이제 바이러스의 크기가 얼마인지 이야기하기 위해 현미경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데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고 해서 바이러스의 크기를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전에 현미경의 배율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이미 크기를 알고 있는 무언가를 현미경으로 보아서, 현미경이 사물을 얼마나 크게 보이게 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 '크기를 이미 알고 있는 매우 작은 것'의 존재는 또 다른 기나긴 믿음의 벨트를 필요로 한다.
그러고 나면 이제 바이러스의 실제 크기가 아니라 현미경 화면에서 보이는 크기를 재야 한다. 그리고 간단한 계산을 해야 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 과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과학에서 뭔가를 측정하는 과정이 간접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비례식으로 계산하는 것이어서 곱하기가 전부이지만, 이것을 건너뛸 수는 없다.
수학은 어디에 있는가? 세상에 대한 믿음의 벨트 끝자락에서 때때로 우리는 이러한 수학의 작동을 확인한다.
이철희 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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