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에 힘입어 탄생한 신산업 분야가 속속 일상 속으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산업도 그 중 하나로 꼽히는데요. 사실 플랫폼은 신산업이라고 하기엔 어느덧 익숙해져버린 이름이기도 합니다. 플랫폼이란 이름은 기업의 사업 운영에서 사실상 옵션(선택)이 아닌 디폴트(기본값)가 돼버렸으니까요. 인터넷과 모바일이 뉴노멀로 자리 잡은 세상 속 플랫폼과 직·간접적 연관이 없는 산업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글로벌로 눈을 돌려보면 여전히 성장여력이 큰 분야가 바로 요즘의 플랫폼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 플랫폼 산업군 중 국내에서 최근 이커머스 플랫폼이 문제가 되고 있죠. 정산 문제로 시끌한 티메프 사태 얘기인데요.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 지연, 입점업체들의 구입 취소 처리 등에 이어 큐텐의 다른 자회사들로도 사태가 번지는 양상을 보이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논의 되던 플랫폼 규제론도 힘을 받을 기세인데요. 하지만 기존에 논의되던 플랫폼법이 현재 문제의 해결책이 될지는 의문이 듭니다.
일단 작금의 사태가 티메프로 대표되는 큐텐 계열에 한정되는 문제인지, 아니면 이커머스 플랫폼 전반에 걸친 문제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의 발생 원인이 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텐데요. 여기에다 플랫폼의 특성에 대한 이해와 인정 또한 필요합니다.
현재 큐텐 측은 사태 해결을 위해 일명 C커머스라 불리는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를 상대로 M&A에 나설 궁리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실제로 성사될지는 미지수지만, 이렇게 되면 헐값에 한국 이커머스 안방 한 켠을 내주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습니다. 국경이 없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사업의 속성상, 국내 기업이 눌리면 예상치 않게 해외 기업이 득세할 기회를 쉽게 맞게 될 수도 있는 시장인 것이죠.
또 아직은 다양한 주체들이 발을 담그고 있지만,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같은 몇몇 오프라인 유통업종들처럼 이커머스 플랫폼 시장은 결국 규모의 경제에 의해 소수 기업들이 독과점하는 시장으로 흘러갈 공산이 커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티메프 사태는 어쩌면 그 과정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태일지도 모릅니다.
이같은 이커머스 시장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플랫폼법이 이번 사태의 해결책으로 연결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플랫폼법은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현재 이커머스 플랫폼 시장이 완전히 무르익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규모가 큰 몇몇 플랫폼을 겨냥한 플랫폼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이번 티메프 사태를 미연에 방지될 수는 없을 겁니다. 티메프 사태는 엄밀히 말해 중소형사에서 발생한 이슈이고, 정산 지연 문제 자체도 사실 독과점에 따른 문제가 아닌, 금융 규제 공백에 따른 문제이니까요.
우려되는 점은 티메프 사태로 포퓰리즘적 시각이 발동해 플랫폼 산업 전반에 걸친 정책이 느닷없이 규제 일변도로 흐르지는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소비자가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이커머스 플랫폼 환경 조성입니다. 모호하나 강력한 새로운 법으로 플랫폼 산업 자체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보다는, 현재 시장이 명확하게 실패한 부분부터 손을 보는 것이 필요할 텐데요. 가령 기존 오프라인 유통에 적용되고 있는 법 중 이커머스에도 적용해야 하는데 빠진 부분은 무엇인지 빠르게 점검하는 식도 가능하겠죠.
서울중앙지검이 큐텐 대표이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가면서 그 배경으로 언급한 건 '사기 등 혐의'입니다. 정부와 국회가 이번 사태 이후 플랫폼 산업을 대할 때 부디 '혁신 노력'과 '탐욕에 의한 사기'를 분명히 구분하며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규제 일변도 정책은 자국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또 다른 중요한 목표를 놓치는, 지극히 일차원적인 접근이 될 수 있습니다.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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