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세 번째 쓰는 글입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둘러싼 끝이 안 보이는 '의정갈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지난 2월 처음으로 '의정갈등'을 바라보면서 대한민국 의사들에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되새겨보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3월에도 변화 없는 제자리걸음 상태를 지켜보며 의·정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하는 글을 또 썼습니다. 또다시 석 달 후, 여전히 똑같고 끝이 안 보이는 현 상황을 바라보면서 다시 씁니다.
이번에는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정부와 병원 측 불허 명령에도 17일부터 무기한 집단휴진에 돌입했습니다. 응급·중환자실 등 필수 부서는 제외한다지만, 전체 교수 절반 이상이 휴진에 동참했습니다. 세브란스병원도 오는 27일부터 전면 휴진에 들어가고, 서울아산병원 등 다른 대형병원 교수들도 무기한 휴진을 논의하는 등 집단 휴진이 확산될 조짐입니다. 지난 넉 달간 한 걸음도 진전된 것이 없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그나마 한 가닥 위안이라고 한다면 의료 현장에 남겠다고 선택하는 의사들이 아주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국분만병의원협회 소속 140여곳과 120여개 아동병원이 속한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정상 진료를 하겠다고 밝혔고, 뇌전증 전문 교수들로 구성된 뇌전증지원병원 협의체도 집단 휴진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이들은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사들이 환자를 겁주고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면서 "차라리 삭발·단식을 하고,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정부에 대항하는 것이 맞다"고 소신을 지키며 의료 현장을 택했습니다.
이들의 선택이 의미가 있는 것은 단지 진료실을 지키기로 한 게 아닙니다. '본질', 무엇이 중요한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의사의 '책무'가 어디에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기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의대 증원 문제가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할까요. 의대 후배의 미래는 걱정되면서 본인이 진료하고 치료하는 환자의 생명은 걱정되지 않은 걸까요. 환자가 죽는다면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정당화될 수 없음을 그들의 소신에서 어렴풋이 느낍니다.
의사 집단 휴진에 대한 사회적 반발은 커지고 있습니다. 이미 의사 집단에 대한 국민 신뢰는 회복이 쉽지 않을 만큼 훼손됐습니다. 일각에선 존경받던 '의사 선생님'이라는 호칭에서 '의사 양반'이라는 조롱 섞인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환자의 신뢰를 저버리고 불신을 자초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의사 집단이 벌이고 있는 진료 거부는 국민 생명에 위해를 가할 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명확합니다. 실익 없이 국민 지지만 잃는 집단행동이라는 점을 의사들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진료 거부를 하며 의사의 '사명'을 버리는 것은 결국 '숫자 지키기',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합니다.
물론 정부의 의대 정원 정책과 관련해 의료계의 우려와 비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힘 있는 전문가 집단의 의사 표시는 신중해야 합니다. 의사들이 가장 약자인 환자들을 볼모로 휴진을 강행한다는 것은 결국 사명을 버리고 의시이길 포기한 채, 잇속만 챙기겠다는 뜻으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넉 달간의 의료공백으로 이미 환자들은 많은 피해를 봤습니다. 이젠 더 내몰릴 데도 없는 한계 상황에 처해있는 환자들이 수두룩합니다. 소위 '참 의료인'들이 현장을 지키는 이유도 환자들의 울부짖음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환자를 살려야 할 의사가 환자를 투쟁 수단이나 도구로 삼는 일은 없어야만 합니다. 정부 역시 의료 시스템의 정상화를 위해 하루빨리 대화에 나서는 반면 촘촘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환자에게 고통을 주는 투쟁이 조속히 끝나 네 번째 쓰는 글은 없었으면 합니다.
박진아 정책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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