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투자와 자산관리 영역만 파다가 정책금융이라는 낯선 영역을 들여다본 지난 한 달은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정책금융과 투자는 닮은 구석도 꽤 있더군요.
정책금융은 ‘금융’이란 단어가 붙었을 뿐 결국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만든 금융기관이고 기금입니다. 해야 할 일을 위해선 돈이 필요합니다. 그 종잣돈은 국가가 대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금융권의 출연을 받기도 하고 채권을 발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과 사업모델이 그렇듯, 재원이 풍족한 경우는 드물죠. 늘 부족합니다. 특히나 세수에 수십조의 구멍이 나서 돈 한 푼 아까울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정책금융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이들에게 각종 지원을 하기 위해선 추가로 필요한 돈이 상당한데 돈 나올 구멍이 마땅치 않습니다. 주어진 돈으로 최대한 살림을 잘 꾸려야 하는 것이죠.
어느 기업에 투자할까. 주식을 고를 때 투자자마다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다릅니다만, 투자의 현인 워렌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은 기업 최고경영자의 현금 재배치 능력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업이 몇 년 호황에 올라타 큰 돈을 벌 수는 있습니다. 이 돈은 신규 투자나 부채 상환, 주주 배당, 성과급 지급 등 다양하게 쓸 수 있을 겁니다. 쓰지 않고 쌓아둘 수도 있겠죠. 다만 여유가 있는 이 시기에 경영자가 이 돈을 어떻게 재배치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미래 성장과 영속성이 좌우되더란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호황과 불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들에는 공통적으로 기업이 보유한 현금 등 자산을 아주 적절하게 재배치하는 최고경영자와 경영진이 있었습니다.
우리 정책금융기관들은 어떨까요? 나랏돈으로 빠듯한 살림을 사느라 조금만 신경 써서 지원해도 금세 곳간이 텅텅 빕니다. 결정권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지원이 집중되거나 분산될 수밖에 없는데, 가만 보면 요즘은 정책 지원이 대기업으로 몰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정책금융기관도 각자 성과를 평가받는지라 인풋 대비 아웃풋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겠죠. 제가 투자자의 눈으로 이 결정을 평가한다면 효율성을 중시한 것에 손을 들어주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돈은 지방의 어느 중소기업이 간절하게 기다리는 생명줄이기도 하더란 말씀입니다.
민간 투자의 영역과 정책금융의 영역이 다르기에 효율과 성과가 전부는 아닐 겁니다. 분명한 것은 정책금융기관은 민간 기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 해당 기관이 설립됐는지 존재의 의미부터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금 재배치. 민간 기업이나 정책금융기관에게나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분명한 것은 결정권자에 의해 그 결과와 효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고 여기엔 많은 이들의 생계가 걸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디 각 정책금융기관의 수장들이 해당 기관의 설립 근거법을 꼭 읽어보시고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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