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가인증통합마크(KC)가 없는 어린이 용품, 전기 용품 등 80품목의 해외 직구를 금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사흘 만에 말을 바꿨습니다. 'C커머스', 즉 '중국 e커머스' 공습에 섣부른 대책을 내놨다가 혼란만 부추긴 셈인데요.
물론 국민 안전과 직결된 제품, 특히 어린이 제품이나 전기·생활, 생활화학 제품 등으로부터 일체 위해를 차단하기 위한 점검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당초 취지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방법이 잘못됐습니다. 면밀한 검토 없이 설익은 정책을 '툭' 던졌다가 곧바로 접었습니다. 당연히 여론의 뭇매는 물론,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도 하락은 피할 수 없는 결과이지요.
앞서 정부는 지난 16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의 관계장관회의 이후 "국민 안전을 해치는 해외 직구 제품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유모차, 완구 등 어린이용품 34개 품목과 전기·생활용품 34개 품목은 국가인증 마크인 KC 인증이 없으면 해외 직구를 금지하고, 살균제 등 생활화학제품 12개 품목은 신고·승인이 없으면 해외 직구를 금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해외 직구가 급증하면서 유해 제품 반입 등이 문제가 되자 내놓은 대책입니다.
하지만 소비자 사이에서 "과도한 규제"라는 불만이 쏟아졌고,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 등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안좋아지자 정부는 지난 일요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없던 일'로 처리했습니다. 정책을 내놓은 지 사흘 만에 정부 스스로 정책을 철회한 셈입니다.
정부가 설익은 대책을 내놨다가 바로 접은 일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윤석열정부 들어 여러 차례 반복됐습니다. 실제 지난 2022년 7월 교육부는 초등생의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하향하는 정책을 불쑥 내놨다가 국민의 극심한 반대로 사실상 2주 만에 폐기 수순을 밟았습니다. 지난해 8월엔 정부가 흉악범죄 대책을 세운다며 단계적으로 폐지했던 의경 제도의 재도입을 밝혔다가 하루 만에 '필요시 검토'로 입장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국가 미래를 좌우할 백년대계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하루아침에 바뀌면서 국민 신뢰도가 하락한다는 점입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어느 나라가 발전할 수 있을까요. 역대 정부든, 어느 나라든 국민 불신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는 것을 역사는 고스란히 보여줬습니다.
이번 사태 역시 정부가 고민 없이 대책을 내놨다가 정책 신뢰도를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설령 원래부터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는 정부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국민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정책을 이렇게 허술하게 꺼냈다가 다시 주워 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정부 스스로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아마추어 행정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윤석열정부는 오락가락하는 졸속행정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고 확실한 재발방치책을 세워야 합니다. 좋은 정책, 국가 미래를 좌우할 백년대계 정책은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박진아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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