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없었습니다. 지난달 29일 열렸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이야기입니다.
700여일 만에 한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당초 예정했던 시간(1시간)보다 두 배 이상 길게 대화를 나눴지만 그만큼의 수확은 얻지 못했습니다. 소통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 의료개혁과 연금개혁의 당위성에 동조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135분 내내 평행선을 걸었습니다.
"당장 시급한 민생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들어보겠다"던 윤석열 대통령은 정작 회담의 85%를 자신의 말로 채웠습니다. 민생회복지원금, 이태원 참사 특별법 등 이재명 대표가 요구한 현안들을 장황한 말로 외면한 덕분에 '채상병 특검(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은 물론 김건희 여사의 이름조차 언급되지 못했습니다. 총선 참패 후 악화된 민심을 반전시킬 카드로 2년간 '아끼고 아껴왔던' 영수회담 카드를 꺼내든 것 치고는 상당히 싱거운 결말입니다.
사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영수회담에 일말의 기대를 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대표와 만나겠다고 선언했던 이유도 뻔했고, 그가 쉽게 태도를 바꿀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회동 사실이 알려진 순간을 제외하고 준비 과정과 진행 상황 모두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회담 이후 범야권에서 '우이독경 마이웨이 대통령', 'SNS 사진용 만남'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릅니다.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거대 야당과 정부·여당이 협치 무드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은 차갑게 식었습니다. 지난 2년간 그래왔듯 강대강 대치가 불가피하게 됐습니다.
아마도 22대 국회의 전주곡은 21대 국회의 마지막 한 달에서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민주당의 요구로 지난달 30일 임시국회가 시작됐지만 여야 간 대립으로 본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2일과 28일 등 최소 두 차례 본회의를 열어 '채상병 특검법'과 '전세사기 특별법'을 반드시 처리하겠단 방침이지만 국민의힘은 "정쟁을 유발하는 법안을 처리하려는 본회의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외면하고 있습니다.
거대 양당의 힘겨루기에 상당수의 법안들은 시한부 처지가 됐습니다. 그중에는 상임위원회 논의조차 제대로 안 된 것들도 수두룩합니다. 여야를 나눠 싸울 필요도 없는 법안들이 입으로만 민생과 경제를 외치는 틈바구니에서 잊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쟁이 끊이지 않았던 21대 국회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남은 한 달이라도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길 바라봅니다.
김진양 국회팀장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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