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교황이 만난 한국인
2025-05-28 06:00:00 2025-05-28 06:00:00
지난 21일(현지시간) 새 교황 레오 14세는 즉위 후 첫 번째 일반인 알현 행사를 진행했다. 바티칸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없는 한 매주 수요일 오전 일반인들이 교황을 만날 수 있는데, 즉위 미사 후 첫번째 수요일이었던 이날 성 베드로 광장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교황은 대중들 앞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 단상 위에서 직접 알현 대상자들을 먼저 만났는데, 이 중에는 '특별한' 한국인들이 있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인 이성환, 강성이씨 부부가 주인공이다. 
 
이씨 부부의 로마행은 이태원 참사로 별이 된 딸 상은씨의 버킷리스트에서 비롯됐다. 상은씨가 생전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되면서 부부가 함께 세례를 받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씨 부부는 성당에서 결혼을 하고 싶어했던 딸을 생각하며 혼인 갱신식도 했다. 
 
그러고 나서도 부모로서 뭐를 더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이씨 부부는 교황청에 메일을 보냈다. 교황을 직접 만나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희생된 아이들에게 축복을 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끝에 지난 2월 교황청에서 회신이 왔고 5월21일 직접 알현을 약속받았다. 
 
그렇게 로마행을 준비하던 중 접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은 당혹스러웠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직전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진행한 상은이 아빠 성환씨는 "새로 선출되는 교황님이 만나주실지는 모르겠다"고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현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도 불투명했던 교황과의 만남은 극적으로 성사됐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씨 부부가 들고 있던 현수막의 한글을 알아보고는 한국에서 왔는지를 물었다 한다. 상은이 엄마 선이씨는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상은이 등 159명의 영혼을 돌봐주시고, 부모들이 진실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며 참사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보라 리본과 별 배지를 전달했다. 교황은 선이씨의 손을 잡은 채 이야기를 들어주고는 희생자들의 사진이 담겨 있는 현수막에 축복을 해줬다. 
 
이씨 부부는 교황님을 만나게 된 사실 자체가 감격스럽고 기적 같았다는 소회를 털어놨다. 한국에서는 2년이 넘도록 진실 규명에 조금의 진전도 없어 '과연 우리가 국민으로 대접은 받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만 가득했는데, 되레 먼 타국 땅에서 위로를 받게 됐다. 
 
이들의 모습에서 10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참사 유족을 만나 위로를 건넸던 장면이 겹쳤다. 국가로부터 외면받은 국민을 교황이 두 번이나 품어준 것이다. 
 
언제까지 '내 나라'에서 보호받고 위로받지 못하는 국민이 생겨야 할까. 새 대통령 선거가 일주일 남은 지금, 소외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을 줄 아는 지도자가 과연 누구일지 곱씹어보게 된다. 
  
김진양 영상뉴스부장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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