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울림
2024-02-19 06:00:00 2024-02-19 06:00:00
 '의과대학 정원 2000명' 확대를 놓고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한쪽은 의대 증원을 막기 위해 사직 등 집단행동에 나서고, 다른 한쪽은 집단행동에 나서는 그들을 말리고, 또 다른 한쪽은 그들이 되기 위해 입시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등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참 '가관'입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전국 40개 의대 학생들은 동맹휴학을 추진하고 전공의들은 개별사직에 나섰습니다. 서울대·세브란스·서울성모·서울아산·삼성서울 등 이른바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은 오는 19일까지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 이후엔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집단행동을 통해 일정 기간 의료 공급을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정책 철회를 압박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를 바라보는 정부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강경 대응의 수위를 높이며 업무개시명령 발동과 위반 시 면허취소 처분의 뜻까지 밝혔습니다. 이미 현 정부는 지난 2022년 말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가 벌어졌을 때에도 업무개시명령을 전격 발동해 사태를 조기 종료한 바 있기 때문에 학습효과가 돼 있습니다.
 
이 모든 그림을 지켜보는 여론의 시선은 차갑습니다. 의정갈등이 결국 의료대란으로까지 연결될 조짐이 보이면서 국민들의 시선엔 싸늘함만 가득합니다. 당장 응급 치료가 급한 환자나 보호자가 발만 동동 구를 모습에 한숨부터 나옵니다. '국민건강권'을 볼모로 극단 갈등을 불러일으킨 그들이나, 저들이나 똑같습니다.
 
이런 상황에 오기까지 설득이 부족했던 정부 책임도 있습니다. 정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의료현안협의체를 1년 넘게 28차례나 진행했다면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논의했길래 사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것일까요. 그럼에도 이유 불문하고 환자를 볼모 삼아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의사단체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특히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궐기대회에서 한 전공의가 대놓고 한 "내 밥그릇을 위해 사직했다. 제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는 발언은 이번 집단행동의 본질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5200만 국민의 시선이 싸늘해진 이유이지요. 이제 '정부 대 의사'가 아니라 '5200만 국민 대 의사'로 대결 구도가 옮겨졌습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낭만닥터 김사부'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사람은 현실에서 찾기 어렵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그리고 '수도권 원정 진료'와 같은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목소리이자 호소입니다. 그 작은 바람이 의료계엔 들리지 않나 봅니다.
 
희생·봉사·장인정신이 담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떠오릅니다. "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라는 울림 앞에 숙연해진 적도 많습니다. 굳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의사의 본분은 의료 현장을 지키며 환자를 돌보는 일입니다. '국민건강권'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있는지, 정부와 의사단체에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정부의 현명한 판단과 의료계의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박진아 국회2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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