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감사제 도입 4년)'짬짜미 회계' 감사의견구매 의혹 여전
만호제강 감사의견 거절…이전 감사인 부정회계 묵인 의혹
증선위, 올해 회계법인 제재 명령 16회…회계부정 신고도 급증
부정회계 소송 대부분 회계법인 승소…회계권력 남용 우려
2023-12-04 06:00:00 2023-12-04 06:00:00
 
[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감사인과 피감기업 유착 방지 등 독립성 강화를 위해 도입한 지정감사제의 효과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이어집니다. 지정감사제가 도입된지 4년이 지났지만, 부정회계 신고 건수는 오히려 급증했습니다. 시장 일각에선 회계법인들의 권력만 강화했을 뿐 밀착한 기업에 편의를 봐주는 ‘감사의견 구매’가 여전한 것이 아니냔 지적이 나옵니다.
 
밀접 기업 봐주기?…뒤늦게 발견되는 회계부정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만호제강(001080)은 지난 9월 외부감사인인 인덕회계법인으로부터 2023년 사업연도(2022년 7월1일~2023년 6월30일) 감사보고서에서 의견거절을 받았습니다.
 
감사 의견거절을 통보한 인덕회계법인에 따르면 만호제강은 이미 폐업한 거래처를 대상으로 매출을 인식했다가 취소하거나 거래처에 출고되지 않고 회사가 보관 중인 재고자산에 대해 수익을 인식하는 등 분식회계를 벌였습니다. 인덕회계법인이 외부전문가를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만호제강은 2023년(6월 결산)을 포함해 과거 상당 기간 회계오류 또는 회계부정이 있었습니다.
 
시장 일각에선 그간 만호제강의 회계감사를 실시했던 신한회계법인이 분식회계를 묵인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나오는데요. 만호제강의 분식회계 기간이 장기간 이뤄졌음을 감안할 때 이전 회계법인이 공모 및 방조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지적입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회사가 마음먹고 숨기려 했다면 회계법인이 이를 확인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면서도 “한 회사의 회계감사를 10년 넘게 진행해 왔는데도 놓쳐왔던 만큼 알고도 묵인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신한회계법인은 지난 2007년 7월부터 2022년 6월까지 16년간 만호제강의 감사업무를 맡아왔는데요. 지난 수년간 사측이 선임한 외부감사인의 감사에서는 적정 의견을 받았던 재무제표가 올해 지정감사인에 의해 의견거절을 받은 겁니다. 현재 만호제강은 상장폐지 이의신청을 제기하며 내년 10월16일까지 개선기간이 부여된 상황인데요. 짬짜미 회계에 대한 지적이 나온 신한회계법인의 경우 상장폐지 여부와 관계없이 투자자들의 소송을 피하긴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수년간 회계법인이 놓쳐왔던 회계부정이 뒤늦게 확인되는 경우는 이밖에도 많습니다. 현대약품(004310)의 경우 지난 5월 회계처리기준 위반에 따른 검찰고발 등 조치를 받았는데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에 따르면 현대약품이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간 매출인식 시점 수익에서 판매장려금을 제하지 않았고, 결산시점(11월 말)에는 판매장려금과 미지급장려금을 과소추정했습니다. 
 
현대약품의 경우 지난 2007년(11월 결산)부터 지난 2022년까지 한영회계법인의 외부감사를 받았는데요. 증선위는 17년간 현대약품을 감사해온 한영회계법인에도 감사 소홀 등의 이유로 과징금, 손해배상공동기금 30% 추가 적립, 현대약품 감사업무 제한 2년 등 감리제재를 명령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증선위가 회계법인에 감리제재 명령을 내린 횟수는 16회에 달합니다. 최근 7년간 회계부정에 대한 내부고발 또한 크게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금감원에 접수된 회계부정신고는 총 115건으로 지난 2019년 19건에서 6배 증가했습니다. 
 
막강한 회계권력, 물밑 감사의견 구매 행위 여전
 
업계에선 지정감사제 이후 강화된 회계법인의 권력이 오히려 부작용으로 작용한 것이란 의견도 나옵니다. 관계가 밀접한 기업의 편의를 봐주고 무관한 기업에는 엄격한 기준을 강요한다는 설명입니다. 실제 지정감사제 시행 이후 감사의견에서 최초 비적정 의견을 받은 기업 중 절반은 지정감사제에 따라 감사인이 변경된 사례로 확인됩니다. (관련기사=감사인 변경시 의견거절 확률 높아진다)
 
익명의 회계사는 “감사인 지정제 이후 감사 시장 경쟁이 줄었다지만, 기업에 유리한 회계 처리를 위해 감사인을 선택하는 경우는 여전히 많다”면서 “고강도의 감사를 피하기 위해 빅4 보단 과거 연이 있는 회계법인이나 로컬 회계법인을 찾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회계법인이 감사 의견으로 소송에 걸리는 것은 회계 감사에서 횡령이나 분식회계를 짚어내지 못해 ‘적정’ 의견을 줬다가 나중에 문제가 된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소송에서도 대부분은 회계법인이 승소해왔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감사업무 부실 등을 사유로 회계법인이 피소되어 종결된 민사소송 건수는 총 60건으로 회계법인 패소한 경우는 15건입니다. 화해로 종결된 4건과 나머지 41건은 기각·각하 등을 포함해 회계법인이 승소했습니다. 교보생명의 주식가치를 부풀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진 회계사들 역시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죠.
 
익명의 업계 관계자는 “회계법인은 상장사의 존폐를 결정하는 감사의견을 내리는 만큼 ‘갑’과 ‘을’의 관계일 수밖에 없는데 지정감사제 이후 회계 법인의 권력을 더욱 커졌다”면서 “자유 선임으로 회사의 재량을 보장한다지만, 자유 선임에서 배제된 회계법인이 지정 감사를 맡을 수도 있는 만큼 경쟁력은 낮아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라고 밝혔습니다. 
 
한 회계법인 회계사는 “워낙 주먹구구식으로 회계를 처리하는 상장사들이 많다 보니 단기간 감사기간 동안 발견하지 못한 분식회계 등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 “신외감법 도입 후 감사인의 책임도 커지면서 감사시간이 늘었고 이전에 발견하지 못한 분식이 발견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감사인과 피감기업의 유착 방지를 위해 시행된 지정감사제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금융감독원, (사진=뉴시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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