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위기였습니다. 예견된 실패였습니다. 상식은 간데없고 비정상이 온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관용 따위는 종적을 감췄습니다. 그 자리엔 혐오만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0선의 비호감 대선 후보의 경쟁. 전례 없는 가족 리스크 의혹. 수신도 제가도 없이 치국을 논하다가 맞은 대선. 바야흐로 공포의 원시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강박처럼 휘몰아친 '자기 절대화' 최면
후폭풍은 거셌습니다. 제가를 못한 이들은 나란히 두 개의 딜레마에 봉착했습니다. 하나는 정체성의 위기. 다른 하나는 리더십의 위기. 두 위기가 맞물리자, '자기 절대화'가 극에 달했습니다. 나만 옳다는 자기 최면이 강박처럼 휘몰아쳤습니다. 인지 부조화의 끝판 왕인 내로남불이 횡행한 결과, 대통합은커녕 '대봉합'만 추진하다가 1년 반이 흘렀습니다.
이들이 등장할 때부터 호명된 확증편향. 정치적 맹신은 민주주의를 죽이는 확신범입니다. 무오류주의는 필연적으로는 근본주의와 배타성을 수반합니다. 나만 옳다는 선민의식. 그땐 맞고 지금은 틀렸다는 내로남불은 정치적 사기에 불과합니다.
'실패한 제가'가 부른 '치국의 한계'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약점을 가리기 위한 인습적 경쟁의 만연화. 지지 기반이 약한 윤 대통령은 과거 보수진영 권력자들이 주로 쓴 '공안 통치'를 꺼냈습니다. 팬덤을 가진 이 대표는 지지 기반인 '개딸(개혁의 딸)'에 올라탔습니다. 꼭 빼닮았습니다. 정치 수단만 다를 뿐, '분할통치' 전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본질은 뼛속까지 같습니다.
파국적 후과는 참혹했습니다. 냉소 정치를 넘어 냉전 정치의 일상화. 양극단의 지지층은 기승전 '완력'을 앞세워 밀어붙입니다. 1960∼7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시대의 극렬 홍위병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자가당착으로 연결된 거대한 뫼비우스의 띠가 우리 일상을 휘감았습니다. 광기가 온 세상을 뒤덮었습니다.
비상구 안 보이는 '대한민국의 비극'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빈곤한 철학입니다. 정치적 무지입니다. 인지편향을 증명한 '더닝 크루거 효과'에 따르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합니다. 이른바 과잉 확신입니다. 실제 순진한 이들이 정치적 극단주의에 빠지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특히 이들은 유독 한 가지에 꽂힙니다. 꽂히는 대상은 '자신의 거울상.'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반공주의와 팬덤정치에 사로잡힌 것은 과연 우연일까요.
윤 대통령의 이념 극대화·이 대표의 팬덤 극대화 전략은 총과 칼만 안 들었을 뿐, 물리적 폭력을 능가하는 정치 수단입니다. 윤 대통령이 공산 전체주의를 언급하는 순간, 민주주의와 복지, 인권 등의 토론 공간은 사라집니다. 이 대표가 팬덤 정치에 의존하면 할수록 가치 경쟁은 실종됩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주어진 책임윤리를 망각하지 마십시오. 책임윤리 없이 신념윤리만 좇는 한, 대한민국의 비상구는 없습니다. 막스 베버의 말처럼 '책임윤리를 잊는 순간, 정치인의 신념은 이미 좌절된 신념일 뿐'입니다. 윤 대통령님, 말로만 '국민이 늘 옳다'고 해선 안 됩니다. 가족 리스크 관리는 물론 극우 인사 배제, '전 정권·민주당·언론' 탓 근절, 대야 소통 등이 필요합니다. 이 대표님, 선거 승리의 축배는 6개월 뒤로 미루고 개딸과의 결별을 선언해 주십시오.
정치는 구조론이 아닙니다. 실천론과 행동론에 가깝습니다. 무릇 정치란 제도 이행을 위한 기나긴 여정이 아니겠습니까. 노자는 도덕경에서 "누가 가만히 있는 것을 움직여서 생기가 살아나게 할 수 있겠냐"라고 했습니다. '윤석열·이재명'답게 서릿발치는 결기를 보여주십시오. 군자는 의에 밝지만 소인은 사사로운 이익만 좇습니다.
최신형 정치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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