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현대제철의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하청노조에 대해 교섭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현대제철은 묵묵부답입니다. 이는 지난해 3월 내려진 판정이지만 여전히 지루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하청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피를 말리기 위한 전략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9일 노동계에 따르면 금속노조 현대제철 하청노조가 현대제철에 △산업안전보건 △차별시정 △불법파견 해소 △자회사 전환 관련 협의 등 4가지 의제에 대한 교섭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대제철 하청노조의 요구는 지난 2021년 7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 당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현대제철의 교섭 거부에 현대제철 하청노조는 같은해 8월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신청했습니다.
당시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현대제철은 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다"라고 판정했지만, 중노위는 이를 뒤집었습니다. 중노위는 지난해 3월 산업안전보건 의제에 한해 현대제철 원청이 하청과 중첩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고 공동으로 교섭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중노위의 이같은 판단은 순천공장에서 냉연강판 제조업무를 수행하는 하청노동자들이 해당 지방 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는 등 지방 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으면서 시작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후에도 현대제철 하청노조는 현대제철에 교섭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교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같은해 8월 쟁의조정을 신청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대제철과 현대제철 하청노조의 교섭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2022년 9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양재동 본사 앞에서 불법파견과 정규직과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현대제철 측은 중노위가 하청 단위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이행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듯 보입니다. 중노위가 하청노조와의 교섭요구 사실 공고를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교섭요구 사실 공고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위한 절차입니다. 노동조합이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하면 사용자(기업)는 복수노조 간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개시할 수 있도록 그 사실을 공고해야 합니다.
중노위는 "하청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교섭창구 단일화를 거친 하청노조는 원청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설립된 다른 노조와 교섭 창구 단일화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면서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이 원청까지 확대된다 하더라도 이는 제삼자인 원청에게 교섭의무가 인정된 특정 교섭의제에 한정되는 것이 기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제철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교섭 의무를 인정한 중노위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서울 행정법원에 행정소송 을 걸었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올 초 현대제철이 중노위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 1차 변론기일을 열고 쟁점을 정리했다고 밝혔습니다. 원고인 현대제철과 피고인 중노위, 보조참가인 전국금속노조 등 당사자들은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이 없다며 재판부의 판단을 요구했습니다.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관계자는 "현대제철은 대법원의 판결까지 보면서 노동자들의 피를 말리려고 하고 있다.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힘이 약한 하청 노조들이 자연스럽게 식물노조가 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현대제철이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해 7월 대법원이 11년 만에 포스코 사내 하청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의 불법파견은 파견법 위반으로 판결이 났고, 앞선 재판들을 보면 현대제철 측이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법원의 판결이 나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같은 노조 주장에 대해 사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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