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신뢰가 무너졌다
2023-07-27 06:00:00 2023-07-27 06:00:00
신뢰를 뜻하는 영어 단어 트러스트(trust)의 어원은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의 트로스트(trost)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믿을 경우, 그 사람이 배신을 저지르진 않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유럽 중세에는 '법적 소유자가 맡긴 재산을 보유하거나 사용하는 사람에게 놓인 신뢰'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불신(distrust)은 '신뢰와는 떨어져서, 즉 신뢰하지 않아서 의심이 드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월급쟁이가 한 푼도 안 쓰고 20년을 모아야 살 수 있다는 서울과 수도권 유명 건설사 아파트에 대한 국민의 감정은 신뢰일까요. 불신일까요. 아파트 부실시공이 논쟁거리가 되는 지금, 불신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집 한 채가 전 재산인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셈이죠. 
 
사례를 볼까요. 서울 강남구의 고급 아파트, 이번 장마 기간 아파트 단지 내 보행자 길과 커뮤니티센터에 성인 발목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습니다. 서울 동작구의 신축 아파트. 로비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면서 바닥에 물이 고이고 침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는 단지 외벽이 갈라지며 철근 다발이 뚫고 나오는 하자가 발생했습니다. 지난 4월 발생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는 철근이 기준치보다 적게 들어갔고 콘크리트 강도도 낮았습니다.
 
아파트 부실공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나는 추세인데요. 국민권익위원회가 집계한 최근 3년간 아파트 부실시공 관련 민원은 무려 41만여 건에 달합니다. 올해 초 한 건설사가 충북 충주에 지은 임대 아파트의 경우 벽체가 벌어지고 철골이 노출되는 등 중대한 하자가 속출했는데, "그냥 사세요"라고 쓴 조롱성 낙서까지 발견돼 공분을 샀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등 그동안 부실공사가 발생할 때마다 감독과 감리의 부실을 지적하고 강화해 왔습니다. 실제로 건설기술진흥법에는 부실시공을 방지하고자 관련 사업계획 등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부실 정도에 따라 벌점, 벌금 등을 부과하죠.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의한 처벌을 추가로 받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했는데도 크고 작은 현장 부실은 여전하고 사고와 재해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부실시공 문제를 뿌리 뽑지 못하면 앞으로도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죠. 최근 붕괴된 현장의 안전관리 책임자가 안전 주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구속됐습니다. 담당자 일부만 처벌받고 사태가 마무리된다면 이러한 관행은 앞으로도 고쳐지지 않을 것입니다. 
 
부실시공을 막으려면 엄한 형벌을 내리는 것과 함께 제도적 쇄신이 요구됩니다. 아파트를 포함한 건축물 부실공사는 단순히 재산권 침해가 아닌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국민의 불신을 신뢰로 바꾸기 위해선 부실공사를 완전히 추방할 선진 제도 도입이 시급해 보입니다.
 
강영관 산업2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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