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석에서)대통령의 ‘자기부정’
2023-06-29 11:10:41 2023-06-29 17:34:09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 환호에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993년 2월25일. YS는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문민정부의 출범이었고, 서로 총칼을 겨누며 적대시했던 ‘민족’ 개념의 재정립이었습니다.
 
진영은 달랐지만, DJ는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빙하와도 같던 한반도의 냉기를 녹였습니다. 민족 화해는 DJ의 숙원이기도 했습니다. 노무현과 문재인, 두 전직 대통령도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DJ의 기조를 철저히 계승했습니다. 아니,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가려 애썼습니다. 남북 두 정상이 얼싸안았고, 이를 지켜본 국민은 ‘종전’ 기대감에 부풀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9년 7월25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23년 6월28일. 윤석열 대통령은 민족 화해의 이 같은 노력을 “반국가 세력들”의 “읍소”이자 “노래”로 매도했습니다. 한반도를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체제로 몰아넣은 것도 모자라,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했습니다. 윤 대통령 주장대로라면, 그는 반국가 세력의 일원이 됩니다. 반국가 세력의 수괴에 고개 숙이고 검찰총장 임명장을 받은 ‘공범’인 꼴입니다. 아무리 정치가 비정한들, 이보다 더한 자기부정이 있을까요. 전임 정부를 부정한다고 정통성이 확립되는 것도 아닙니다. 정부의 연속성만 무너뜨려 대외적 신뢰도를 떨어뜨릴 뿐입니다. 
 
윤 대통령의 자기부정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대통령은커녕 정부여당 누구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국가기념일을 정부 스스로 외면한, 사상 처음 있는 희귀한 장면이었습니다. 대신, 과거 관제 데모를 주도했던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에는 24년 만에 대통령으로 함께 했습니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는 윤 대통령의 약속을 다시 살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윤 대통령이 그토록 외쳤던 ‘자유’는 선택적 자유인 듯 보입니다. ‘지성’과 ‘자유’를 말하면서도 시장에는 무차별적으로 개입합니다. 시중은행 수장들이 정권 입맛대로 교체됐고, 대표 연임을 노리던 KT는 아예 박살이 나 너덜너덜해졌습니다. 회장 교체를 목전에 둔 포스코는 용산 눈치를 살피느라 분주합니다. 통신비와 라면 값에도 관여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수출을 주도하던 반도체마저 한미 동맹에만 매달리는 정부 논리에 휘말려 있다는 점입니다. 경제적 실익을 추구해야 하는 외교전에서 윤석열정부는 패권국가의 논리와도 다름없는 ‘가치동맹’을 역설하며 국익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22일 당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자식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뿐만입니까.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비극 앞에 정부는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국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행정안전부 장관 문책조차 회피했습니다. 최소한의 정치적 도의 대신 ‘내 사람’에 대한 ‘고집’을 택했습니다. 이쯤 되면 조폭 논리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자기부정이 국가의 존재이유마저 부정케 했고, 믿을 수 없는 참혹한 현실에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은 오늘도 눈물과 원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문제는 정치!”라고 말입니다. 빌 클린턴이 대선에서 “문제는 경제”라고 말했다면, 지금 한국사회가 직면한 모든 갈등과 대립의 원인은 분명 정치인 듯 보입니다. 입법부인 국회의 법률안마저 일상적으로 거부되며 삼권분립이 무너졌고, 여야 모두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말만 쏟아내며 진영에만 호소하는 현재의 정치로서는 그 어떤 갈등도 조정될 리 없습니다. 갈등과 분열이 더 이상 증폭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심정이 어디 저 하나 뿐이겠습니까. 상식만이라도 되찾길 간절히 바랍니다.
 
편집국장 김기성 kisung0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