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미국 정부가 28일(현지시각)부터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신청을 시작키로 하면서 우리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미국이 자국에 반도체 생산시설 등을 짓는 기업에 390억 달러(약 50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주는 내용인데요. 이면에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겠다는 제재 내용이 깔려있어서 중국에 진출한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적잖은 부담을 안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이 아닌 국내 투자처로 우리 기업의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기업이 협상에 있어서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해법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최대한 유예기간을 벌어서 대응할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됩니다.
삼성전자 사옥.(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미국 대중국 견제에 사업 불투명
2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과 연구개발 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라 보조금 수혜 대상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에 신규 투자를 하지 않은 기업에만 보조금을 주겠다는 입장입니다. 때문에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등이 최종적으로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습니다.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은 지난 23일(현지시각) 조지워싱턴대 강연에서 "다음 주 화요일(28일)부터 반도체지원법 보조금 신청을 받는다"며 "보조금은 기업들이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도록 유인하자는 취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들 인텔이 얼마를 받는지, 삼성이 얼마를 받는지 알고 싶어 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미중 갈등 속에 끼인 우리 기업들은 난감한 상황을 맞게 됐습니다. 한국 반도체 기업의 중국 내 공장에서 일정 기술 수준 이상의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한도를 설정하게 될 것이라는 게 미국 정부의 입장인데요. 중국 시안과 쑤저우, 우시와 충칭에서 각각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됐습니다. 당장에 미국이냐, 중국이냐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 셈인데요.
SK하이닉스 본사 모습.(사진=연합뉴스)
"모 아니면 도, 고르기 쉽지 않다"…"지켜보고 있는 단계"신중론도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를 생산하는데 미국의 기술을 뺄 수는 없고, 중국도 굉장히 큰 시장이어서 어느 하나를 모 아니면 도처럼 고르기는 쉽지는 않은 문제"라고 토로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어려운 문제지만 정부가 국제 규범을 준수하면서 미국과 협상하는게 중요해진 시점"이라며 "정부가 우리 기업이 영리를 추구해야 하는 사정을 잘 감안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미국이 여러 제재를 가하는 이유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겠다는 거지 다른 반도체들의 공급망에 차질을 빚게 하는 것은 아닐 것으로 본다"며 "구체적으로 해당 법안이 어떻게 세팅될지 지켜보고 있는 단계"라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리스크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도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 중 하나입니다. 미국은 범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존 시설 운영까지 제한하진 않지만, 범용 반도체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반도체 지원법은 범용 반도체를 로직(비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28nm(나노미터)나 그 이전 세대로 규정했지만, 한국 기업의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는 특정 규격을 명시하지 않습니다. 업계는 범용 반도체의 기준을 너무 낮게 잡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 "국내로 선행해 투자 늘려야" "유예기간 벌고 기업이 해결해야"
전문가들은 중국이 아닌 다른 투자처를 발굴해야 한다는 해법부터 기업 스스로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전병서 중국경제연구소장은 "우리로서는 기존에 있는 중국 공장들에 추가 투자를 못하는 손실과 기회 비용이 생기게 된다"면서 "리스크 해소를 위해 한국에 투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제언했습니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겸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삼성 반도체의 60%가 중국에서 소비되고 있고 삼성이나 SK가 이미 투자한 비용이 천문학적인데 그 시장을 포기하라고 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소장은 "결국은 유예 기간을 최대한 버는 수밖에 없다"며 "그에 대한 대비책은 기업이 주도를 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정부가 기업의 결정을 간섭하지 말고 보조적으로 돕는 정책을 제시해야지 그 반대가 되면 상당한 리스크를 안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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