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과 한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순방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대만 문제에 대한 한국의 기존 입장은 지난 해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유지가 중요하다”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 동조한 대만 대응 기조에 중국은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바 있다.
중국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갖고 있는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간 전방위 충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중국은 가상훈련이라지만 대만을 포위하듯 둘러싸고 미사일과 실탄사격을 하면서 ‘대만침공시나리오’의 실현가능성을 시험대에 올렸다. 미국 역시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대만 방위를 위해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도 불사한다는 의지를 강조하면서 대만 해역에 항모를 진입시키면서 군사작전에 돌입하는 등 양측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졌다.
펠로시 의장은 아시아순방을 마치고 귀국했지만 그녀가 던진 동북아에서의 미중간 군사적 긴장은 보다 고조될 수밖에 없어졌다.
그동안에는 대만 문제가 우리에게 ‘강건너 불구경’수준이었다면 언제라도 한반도로 불똥이 떨어질 수도 있는 연계된 일촉즉발의 현안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휴가중’ 이라는 이유로 이례적으로 동맹국 미국 하원의장을 면담하지 않고 전화통화만 하고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 하지도 않은 것은 긴장도가 높아진 주변 정세를 감안한 신중한 외교행보라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이 정부가 지난 정부처럼 미·중간 균형외교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중국의 눈치를 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중이 대만 대치국면에서 군사충돌을 불사하는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대만 문제에 대해 허점을 보이거나 유약하게 대응할 경우 향후 미중 대결구도에서 계속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11월 중간선거가 있고, 중국 시진핑 주석 역시 오는 10월 주석 3연임을 확정짓는 제20차 중국공산당대회가 예정돼있다는 점이 이번 사태를 급속하게 촉발했다. 중차대한 정치일정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 벌어진 미 최고위급 인사의 대만방문은 미중 모두에게 전략적으로 물러설 수 없는 정치적 사안으로 돌변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반사효과로 기존의 중국의 대만 침공 의지나 침공 시나리오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자 시 주석으로서는 대만침공을 통해 중국통일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선명하게 제시하는 한편 미국과의 충돌도 불사한다는 최고지도자의 강경한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한 셈이다. 그래서 시 주석은 침공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훈련을 통보하고 둥펑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의 군사적 ‘모험’을 구체화시킨 것이다.
미·중의 정치적 상황이 대만문제에 대한 변화를 일으킨 요인이지만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한반도의 전쟁위기도 고조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중국전략은 동북아에서의 한미일상호방위조약과 호주 인도 일본 등과의 중국봉쇄전략일 것이다. 만일 중국봉쇄 전략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대만침공이라는 군사적 충돌이 도래한다면 평택과 오산 등의 한반도의 주한미군기지는 미군의 신속대응군을 지원하는 병참기지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균형외교가 아니라 동맹을 지원하는 역할에 나서게 되면서 직접적으로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맞서야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북한의 대응도 주목해봐야 한다. 중국은 북한 김정은을 부추겨서 일촉즉발의 전면전 위기를 조성하는 등 남북간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미군의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집중배치하도록 할 공산이 크다.
그런 다음 불시에 훈련을 빙자해서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의 대응은 2개의 전선으로 분산되면서 전략적 선택에 나서는 성황에 처하게 된다. 북한이 핵무기 위협까지 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세계대전을 각오한 무모한 도발이라는 점에서 가시화될 수 없는 시나리오이지만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전쟁을 억지할 수 있다. 그저 대만침공시나리오 수준의 대응에 머문다면 두 개의 전쟁이 동시에 펼쳐질 경우 허둥지둥댈 수밖에 없다.
당장 10월 이전에는 미중 어느 쪽에서도 군사적 충돌을 감행하지는 않겠지만 10월 이후 사정은 급변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확인하듯 군사적 개입을 꺼리는 미국의 소극적 대응이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는 적극적 모티브를 제공했다.
평화는 외교로 오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국가간 전쟁은 계속되고 국제사회의 외교적 압박은 강대국에는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전쟁을 막고 위기에 대처하는 것은 스스로 자위력을 갖추고 잘 준비하는 것뿐이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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