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정말 이런 세상이어도 괜찮은 건가요
2022-06-02 04:00:01 2022-06-02 04:00:01
내로남불’, 자기 합리화를 극도로 끌어올릴 때 극소수 기득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무기다. 똑같은 일이 벌어졌어도 남이 하면 천하의 나쁜 놈이 나쁜 일 한 것이지만, 내가 하면 선량한 시민으로서 정당한 일을 한 것이라 주장될 때내로남불의 칼 춤은 여지 없이 번뜩인다. 그리고 그 춤을 본 우리들 입가엔 언제나 쓴웃음만이 남는다.
 
장관 인선 관련 청문회가 한창일 때 제일 많이 떠오른 단어가내로남불이었다. 자식 문제로만 파고들면 어떻게 하나같이 부모 잘 둔 특혜에서 자유로운 이가 없는지, 나중엔 허탈한 웃음도 목구멍 안에서 민망해질 정도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문제에 들썩였던 세상은 이번 청문회 동안 쏟아져 나온 각종 의혹들에선 도대체 어떤 분노를 해야 했을까 싶다. 장관에 임명됐거나 자진 사퇴한 의혹 당사자들 모두가내로남불식 자기 합리화를 해명으로 내놓는 것을 보며 세상의 분노는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뭘 하기에 얼굴만 붉히고 딴청을 피우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난 알았다. 그 딴청의 간결한 속성을. “통하는구나. 아무리 눈에 보이는내로남불이라도 뻔뻔한 자세로 계속해 밀어붙이면 나중엔 그 뻔뻔함이 진실로 호도될 수 있구나.”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단 걸 인정해야 했고 받아들여야 했다.
 
눈을 더 크게 뜨고 민감하게 현실을 살펴야겠다 생각했다. 뻔뻔한 태도로 자기 합리화를 쏟아내는 수많은 말의 홍수 속에서 진짜 진실을 가려내려면 더 밝은 정신으로 깨어있어야 했다. 그래야 타인이 두른 합리화의 장벽 속에 내 판단이 갇히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얼마 전 특수학교에 다니는 발달장애인 아들이 학교에서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듯한 정황을 전해 들었다. 개학 후 4개월이나 지난 지금까지 교육이라 할만한 것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들이 수업에 비협조적이기 때문이란다. 얼핏 들으면 잘못된 게 없는 말 같다. 공부할 마음이 없는 녀석을 억지로 책상 앞에 앉혀봤자 성적은 오르지 않는다. 이미 경험으로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들은 발달장애인이다. 14세이지만 인지 및 사회적 발달은 2~3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런 아들이 받는 교육은 특수교육이다. 특수교육은 아들처럼 인지와 사회성이 덜 발달해 정규 교육과정이 어려운 장애 학생들을 교육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기 위한 특수한 방법을 찾고 고민하는 데 존재의 이유가 있다. 그런데 아들이 특수학교에서 특수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학교 입장은 늘 똑같다. 아들 탓이란다. 아들 탓을 하는 순간 학교는교육하지 않는 잘못에서 자유로워진다. 정당한 합리화가 형성된다. 부모 입장에서 학교가 굳건히 친 합리화 덫에서 빠져 나오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특수교육대상자를 특수교육하지 않는 특수학교의 당당한 자기 합리화에 수긍해버려야만 한다. 수업 시간에 협조적이지 않는 2~3세 정신연령의 내 아들이 잘못인 것만 같다. 눈을 크게 뜨고 민감하게 현실을 판단해야 하는 이유다.
 
내로남불이 판치는 세상이 도래해 버렸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지만, 남이 하면 불법이다. 남의 자식 입시 특혜는 불법이고 내 자식 입시특혜는 몰랐던 일이거나 절대 특혜가 아니다. 특수학교에서조차 방치되는 학생이 있다면 수업 안 한 학교 잘못이 아닌 수업 안들은 학생 잘못이다. 이래도 되는 건가. 정말 이런 세상이어도 괜찮은 건가. 이게 공정과 상식으로 가는 과정인가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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