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검수완박'과 검찰의 원죄
2022-05-03 12:00:00 2022-05-04 00:49:13
검찰청법에 이어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3일 오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오전 10시에 예정됐던 국무회의를 연기해 오후에 열기로 했다.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없을 분위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강성 지지자 중 한명의 입에서 시작됐다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현실화 되는 것이다. 여당이 법안을 강행추진하면서 그 명칭을 두고 '검수덜박'이라느니, '검찰 정상화 법안'이라느니 설왕설래하더니 최근에는 '검찰 수사권 문제로 완전 박터지게 싸운다는 뜻'이라는 말도 나왔다. 
 
과연 그렇다. 지난 주말 검찰청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 전 국회의장실 앞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육두문자 말폭탄'이 진영을 오갔고, 여야간 육박전에서는 여러 부상자도 나왔다. 총칼만 안 들었을 뿐 백병전을 방불케했다. 이런 아사리판에서 의원들이야 서로 죽기살기로 맞붙는 것이 일이니 박이 터질 수밖에. 그들 스스로도 각오한 일일테다. 그러나 당장 애먼 국민들 박이 터지게 생겼다.
 
정부로 이송된 두 법안 중 특히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두가지 치명적 독소조항을 품고 있다. 검찰 직접수사권 범위를 제한하는 개정 검찰청법안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지난 4월30일 국회를 통과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신설된 196조 2항은 고소인의 이의신청이 있는 경찰의 불송치(불기소 의견) 사건에 대한 검찰의 보완수사를 '동일성을 해치지 아니하는 범위 내'로 가둬놨다. 경찰이 수사해 결론을 내린 범위 내에서만 검찰의 보완수사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검찰 보완수사 단계에서 공범이 추가 발견되거나 심지어는 다른 사람이 진범이라는 정황이 나와도 더 나아가질 못하게 된다. 개정안에는 이 경우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 조항도 없다. 경찰이 불송치하면 그 사건은 사실상 그대로 확정되는 셈이다. 수사기관인 경찰이 확정 판결과 같은 최종심 지위를 가지게 됐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법률가들의 지적과 같이 '동일성'은 기소 이후 공판 단계에서 공소장 변경에 대해 적용되는 개념이다. 형사소송법이 1954년 5월30일 시행된 이후 총 47회에 걸친 개정이 있었지만 '동일성'은 공소장 변경 제한 기준을 정한 형사소송법 298조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70년 가까이 변함 없이 유지된 형사소송법상 원칙이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동일성' 개념의 모호성 때문에 검찰이 보완수사를 하더라도 범죄자들이 '동일성'과 법문 해석에 대한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방패로 딴지를 걸면 수사는 그만큼 지연되고 사건 해결과 피해자 구제는 더욱 요원하게 된다. 변호사들은 개정법 시행을 두고 '범죄 저지르기 딱 좋은 시절이 왔다'고 '웃픈 우려'를 하고 있다. 이를 두고 '기존의 틀'을 깬 새로운 입법 시도라 반박을 할 것인가.  
 
개정안에 245의7 규정을 둬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명시적으로 배제한 것은 더욱 심각하다. 여당은 '고발 전문 단체'로 변질된 일부 시민단체의 고발 남용을 방지하겠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개정안 때문에 장애인과 미성년 피해자, 성범죄 피해자들을 도와 고발하고 있는 시민단체의 노력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감사원·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중앙선거관리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국민권익위원회 등 기관고발도 무력화된다. 여당에서는 추후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둬 문제점을 해결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스로도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모양인데, 왜 법안을 제대로 만들지도 않고 통과시켰는가. 특위 구성이나 개정안 논의가 언제 종결될지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기간 동안 생기는 형사사법 공백은 누가 메울 것인가.
 
여당에서는 이 두 개정 조항에 대한 문제점 지적에 대해, "그것은 검찰이 경찰을 폄하하는 논리"라고 싸잡아 반박하고 있다. 검찰 주장을 보면 완전 부정하기는 어렵겠다. 하지만, 그뿐일까. 경찰이 범죄자에 대해 내린 무죄 판단을, 검찰에서 다시 한번 받아보고 싶다는 국민의 생각이 잘못이라는 말인가. 재판도 3심 아닌가. 
 
수정안에는 개정 이후 비대해진 경찰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마련한다던 가칭 중대범죄수사청(한국형FBI) 조항은 아예 실종됐다. 이를 두고도 여야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그러면서 사법개혁특위에서 논의한단다. 아무런 대안이나 견제 장치 없이 이렇게까지 경찰에 힘을 몰아주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검수완박 사태'에 임하는 야권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자세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두 법안 중 특히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국민 개개인의 재판청구권과 신체·재산의 자유에 직접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방탄법'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을 씌웠다. 형사소송법이 도대체 어찌 '이재명 방탄법'이란 말인가. 사태를 바로 봐야 할 국민의 눈을 가린 셈이다. 당리당략만을 챙기던 국민의힘은 돌연 설익은 국회의장 중재안을 수용해버렸다. 인수위도 어물쩍 찬성 의사를 밝혔다. 그러더니 곧 뒤집었다. 애초 진지한 고민은 없었던 것이다. 
 
검찰의 대처도 유감이다. 수뇌부는 과거 선배들의 '낭만적 악습'만을 답습했다. 직만 던지면 다 해결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동안 검찰은 정치권에서 메스를 들이대지 않으면, 자체적인 개혁안을 고민하지도 마련하지도 않았다. 평검사들이 나서 기소대배심제 도입, 검찰총장 국회출석 의무 입법화 등 뼈를 깎는 개혁안을 내놨지만 너무 늦었다. 법무부도 방관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죄는 선대 검사들에게 있다. 그들이 지금의 사태를 만들었다. 국민 보호하라고 쥐어 준 수사권을 '칼잡이'라는 자뻑에 취해 국민에게 함부로 휘두른 검사, '영감님' 소리에 흠뻑 빠져 우매한 국민이라며 깔 본 검사, 입신양명만이 목적이었던 검사, 정권의 보복수사에 앞잡이가 된 검사, 그 옆에 권력만 쫓아다니며 충성한 검사, 경찰을 무시·하대하며 갑질한 검사, 검찰을 나가서는 전관예우 관례를 등에 없고 후배들 등이나 친 검사, 선대의 이런 못 된 악습들을 특권인양 누리고 흉내낸 지금의 검사… 
 
이들이 먼저 국민 앞에 머리를 풀고 석고대죄해야 한다. 후배들에 대한 사죄는 그 다음이다.  
 
최기철 사회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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