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재개발 문턱을 낮추기 위한 공공재개발 제도가 토지 소유주들 간의 갈등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 공공재개발 구역 지정을 철회하고 신속통합기획 등 민간 개발 방향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하거나 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등이다.
서울 흑석2구역·금호23구역·강북5구역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21일 강남구 개포동 SH공사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헌동 사장에게 SH공사의 공공재개발 공동 시행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제출했다.
비대위 측은 “특별법을 적용해 면적 요건도 없이 소유자 과반수의 동의만으로 SH공사를 사업자로 지정하고 진행한다”며 “이것은 거의 수용에 가까운 절차를 밟겠다는 것으로, 김 사장은 가치 판단을 명확히 하고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들 구역은 ‘도시재생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주민 동의율 50% 요건을 충족하며 공공재개발 구역이 됐다. 원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주민 4분의3 동의와 토지 면적 50%가 포함됐다는 조건이 붙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특별법에 따라 동의율이 내려가고 토지 면적 요건도 완화됐다. 즉 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진 셈인데, 그만큼 동의에 찬성하지 않았다는 주민이 많은 셈이므로 초기 갈등이 복잡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비대위 측은 이들 구역에서 공공재개발을 찬성한 50%가 넘는 소유자들이 20% 수준의 땅만 갖고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특히 흑석2구역의 경우는 지난 1월 공공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며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이었지만 비대위 측에서 지난 9월 주민대표회의구성 승인인가처분 취소와 SH공사의 사업시행자 지정 인가를 취소하라는 내용을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최조홍 흑석2구역 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대부분 2013년 이후에 들어온 작은 땅 지분을 소유한 사람들이 공공재개발을 적극 찬성하고 있다”라며 “다른 곳에 집을 두고 여기에서는 임대료를 받거나 장사 수익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소유주들의 경우는 아파트를 더 준다고 해서 받겠느냐”라고 비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신속통합기획의 등장으로, 공공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거나 후보지였던 곳은 갈등이 더욱 복잡한 상태다. 신속통합기획은 인센티브와 공공기여가 모두 없지만 공공재개발로 추진하면 5년 걸리는 사업이 2년으로 단축된다는 이유에서다.
강북5구역 토지 소유주는 “신속통합기획 같은 민간 재개발을 추진하려던 사람들은 소수의 인원이 먼저 공공재개발을 추진해버리는 바람에 손을 쓸 수 없게 됐다”며 “입주권을 갖기 위해 작은 지분을 쪼개서 들어온 사람들이 최근 10년 내에 많아졌는데, 우리처럼 오랜 기간 거주한 사람들이 아닌 투기를 위해서 들어온 사람들의 의견만 반영된 것이 아니냐”며 형평성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로 대흥5구역, 마천2구역 등은 공공재개발을 추진하다가 신속통합기획 추진으로 사업 방향을 굳혔다. 다만 이미 구역 지정이 된 곳은 지정 철회를 위한 주민 동의서를 반 이상 걷어야한다. 지난달 공공재개발의 일종인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 2차 예정지구로 지정된 신길2구역은 공공재개발 철회를 위한 주민 동의서를 걷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정비 사업에 대한 수요는 있어도 추진이 원활하지 않았던 지역들은 공공재개발을 선택한 경우가 적지 않다”며 “하지만 그 이후에 신통기획이라는 선택지가 추가되면서 기존에 정비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들과의 갈등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흑석2구역, 금호23구역, 강북5구역 비대위 관계자들이 21일 SH공사 앞에서 공공재개발을 반대하는 취지의 성명서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윤민영 기자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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