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경마장 가는 길
2021-10-21 06:00:00 2021-10-21 06:00:00
배우 문성근씨와 강수연씨가 출연하고, 작가 하일지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지난 1991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개봉했다. 부모님께서 단관 극장에서 관람했을 때의 그 느낌을 관람이 불가했던 연소자로서 물어볼 수 없었고, 만약 들어도 이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후 성인이 되고나서도 한참이 지난 최근에서야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자기기를 통해 아주 흥미롭게 영화를 즐겼다. 
 
무려 30년 전 작품에 대한 때늦은 평론도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기에 줄이자면 영화 속 주인공 R이 경마장 가는 길을 방향과 걸음으로 가늠하는 대사는 나오지만, 실제 경마장은 등장하지 않는다.
 
2021년 10월 현재 정치와 사회 분야를 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사안 중 하나가 경기 성남시에 있는 대장동이란 지역에서 불거진 의혹이다. 특수목적법인, 자산관리회사 등 어려운 용어를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이번 의혹은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가 최대의 관심사다. 또 어떤 녹취록에 등장하는 '그분'이 누구인지도 밝혀야 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가상의 경마장 하나가 운영되고 있다. 가상이므로 정확한 장소는 별다른 의미가 없지만, 실제 경마장이 몇 군데 있으니 비록 가상일지라도 위치를 대장동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이 경마장에서는 홀로 치닫는 말 또는 먼저 출발하는 말이 있으면 다른 말들도 일제히 그 경로를 따라간다. 다른 말들은 정확한 경로인 줄은 잘 모르지만, 일단 따라간다. 설사 그 코스가 잘못된 경로라도 말이다.
 
매년 이 계절에 찾아오는 국정감사란 일정 중 한 장소에서 돈다발 사진이 나왔다. '그분'으로 의심되는 한 대선 후보이자 광역단체장이 조직폭력배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물이라고 했다.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는 '자책골', '싸구려 소설' 등 종목과 장르를 아우르는 다양한 표현이 제시됐지만, 이 증거물은 경마의 흥행 요소임은 분명했다.
 
굳이 대장동이 아니더라도 특정 지역, 특정 인물, 특정 사건 등과 연관이 있는 가상의 경마장은 그동안 쭉 명맥을 유지해 왔다. 평소에는 평범한 목장으로 보이는 가상의 장소가 어느 시점이 되면 경마장으로 바뀐다. 그리고 마권을 많이 팔아야 할 것 같은 인식에 휩싸인다. 사실 이러한 경마장은 정해진 코스도 없고, 순위도 매겨지지도 않는다. 딱히 도착점이랄 것도 없지만, 그곳에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배당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상황일 수밖에 없는 구조와 그동안의 관행, 마치 경주처럼 빠르게 결과물을 내야 하는 현실 등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수백만명의 기수 중 하나로서 안타깝고, 자책감을 느낀다. 마권을 구매해 들어갈 수 있는 실제 경마장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관중 입장이 제한되지만, 대장동의 가상 경마장은 아마도 당분간 수많은 관중의 주목을 받으면서 거침없이 운영될 것이다.
 
영화화된 하일지씨의 그 첫 소설은 평단의 찬사와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고 한다. 이번 대장동 의혹 가운데서도 접하게 되는 수많은 보도 중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성과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반대도 있다. 다만 그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소설처럼 때때로 이니셜로 인물을 지칭하거나 행위의 반복이 계속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장소를 경마장처럼 만들 필요는 없다.  
 
정해훈 법조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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