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고단한 재판 끝에 손에 쥔 월급봉투...전시회로 본 '응답하라 옛날법원'
법원도서관 기획전 '구술로 만나보는 법원 이야기' 대법원서 개막
법원 직원 공개채용 시험 기출문제집부터 월급봉투까지 '추억' 소환
전직 대법원장 등 법조계 원로들 '그때 그 시절' 인터뷰 영상도 전시
2021-09-05 12:00:00 2021-09-06 11:03:21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검사의 거친 구형과 피고인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재판부. '법원' 하면 전쟁같은 법정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곳도 누군가에겐 직장이다.
 
법원 사람들의 일상사를 한데 모은 기획전 '구술로 만나보는 법원 이야기'가 1일~13일 대법원에서 열린다. 15일부터는 일산 법원도서관에서 일년 간 전시를 이어간다. 뉴스토마토는 개막 첫날인 1일 전시회를 찾아가 둘러봤다.
 
전시회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끈 건 주제별로 전시된 모니터 세 대였다. 법원 사람들의 일상과 공간 변화, 기술 발전에 대한 선배 법관들의 회고 영상이 주제별로 상영되고 있었다.
 
행사를 주최한 법원도서관은 2015년~2020년 윤관·이용훈 전 대법원장과 김용담·손지열·박만호 전 대법관, 장윤기 전 법원행정처장, 권오곤 전 ICTY(국제유고전범재판소) 재판관 등 주요인사 17명의 인터뷰 영상을 준비했다. 화면 옆에 걸린 헤드폰을 쓰면 정감 있는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1일 대법원에서 열린 '구술로 만나보는 법원 이야기' 전시회에서 고선미 법원도서관 기록연구관이 기획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월급날 25일서 20일로 바꾸고, 전쟁 때는 곡식으로
 
고선미 법원도서관 기록연구관의 안내로 첫 주제인 '재판을 지원하는 사람들' 구역에 들어섰다. 이곳은 1965년 시작된 대법원 재판연구관 제도와 법원 직원 공개채용 시험, 생활인으로서 법관의 봉급 이야기를 다룬다.
 
고 연구관은 "법원 직원 공채는 1950년대부터 있던 것으로 보인다"며 "1960년에 전국 지법(9개 소재지) 단위로 동시 시행됐는데, 그때만 해도 합격자를 모두 모아 연수를 한 건 없었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1977년 합격자들을 1978년에 사법연수원에서 처음으로 모아서 교육했는데, 이때 '법원직 1기'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1977년 처음 시행된 '3급을류 공개경쟁채용시험'은 1994년 '법원행정고등고시(5급 사무관)'으로 바뀌어 명맥을 잇고 있다. 이밖에 통역사와 사환, 원예사와 운전기사, 타자수, 전산직과 사서 등이 재판을 도운 옛날 법원 이야기가 사진으로 남아 있다.
 
법관도 봉급 받는 생활인이다. 이름과 수당, 공제액이 적힌 월급봉투를 보니 현금을 꺼내 정성스레 가계부를 적던 시절의 향수가 느껴졌다.
 
법관의 봉급일이 20일인 이유도 관심을 끈다. 1899년 당시 대한천일은행이 일본 은행 관행대로 정했던 25일 봉급일이 '법원직원 보수규칙'이 제정된 1962년 9월 이후 20일로 바뀌었다. 이 규칙 문서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오래된 실물 자료이기도 하다. 전시 영상을 통해 윤관 전 대법원장이 그해 처음으로 받아본 봉급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구술 영상 중 가장 오래된 이야기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는 '전시수당 급여규정'에 따라 봉급의 2배 전부 또는 일부를 곡식이나 기타 생필품으로 지급되기도 했다.
 
1일 대법원에서 열린 '구술로 만나보는 법원 이야기' 전시회에서 옛날 법원 월급봉투와 '법원직원 보수규칙'이 전시돼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1977년 피고인 수갑 풀고 2021년 민·형사 영상재판 본격화
 
법정에서 검사와 피고인이 마주보고 앉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옛날 상식은 달랐다고 한다. '법원의 공간'으로 고개를 돌리면  형사법정 구조 개선 과정을 생생히 들을 수 있다. 고 연구관은 "윤관 전 대법원장은 1977년 서울형사지방법원에 발령됐는데, 당시 피고인들이 수갑을 차고 법정에 들어와서 수갑을 풀게 했다"며 "재판이 끝난 후, 다른 부장판사들이 찾아와 걱정스러운 말씀을 하셨지만 허허 웃으며 '나는 법에 정해진 대로 재판을 운영할 뿐이오'라고 말했고, 그 뒤에 불미스러운 법정 내 소란은 없었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주제인 '공간의 한계를 넘은 전자법정'에 들어갔다. 여기선 일제 강점기 때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법원예규철과 등기부 전산화에 쓰인 오버헤드 스캐너 등 아날로그-디지털 시대 전환기를 살필 수 있었다.
 
전시회는 지난 7월 법 개정으로 민·형사 영상재판 근거가 마련되기까지 법원이 펴온 노력도 보여준다.
 
1995년 대법원이 제안한 원격 영상재판에 관한 특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대법원은 격오지 주민을 위한 영상재판 규칙을 제정했다. 고 연구관은 "당시 규칙을 기초로 2014년에는 법정 방청 및 촬영에 관한 규칙을 만들어서 당사자와 관계자들이 멀리 있다면 중계 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었다"며 "그해 광주지법에서 진행되던 세월호 사건 중계를 안산지원에서 방청할 수 있는 근거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 팬데믹이 와서 원격재판을 한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을 토대로 지금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법원의 모습을 가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고선미 법원도서관 기록연구관이 1일 '구술로 만나보는 법원 이야기' 전시회에서 컴퓨터가 생소했던 법원이 영상 재판을 도입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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