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스팩(SPAC) 시장에 유독성 거품이 퍼졌다. 주가가 오를 아무런 근거도 없는 폭탄 돌리기다.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최근 증시에서는 다수의 스팩 주가가 급등하면서 거래가 폭발하는 이상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신규 상장한 새내기 중에는 이른바 ‘따상상’을 기록한 종목도 나왔다. 삼성머스트스팩5호는 17일 코스닥시장 상장과 동시에 공모가의 2배로 출발해 상한가로 직행했으며 다음날에도 상한가로 마감해 6760원을 기록했다. 이틀만에 공모가에서 238% 급등한 것이다.
삼성머스트스팩5호 외에도 하나머스트7호스팩, 하이제6호스택이 상한가를 기록했으며 20% 이상 오른 스팩들이 무더기로 출현했다.
스팩 종목들은 지난 5월 하순에도 들썩인 일이 있다. 2주 가까이 상승세를 보이다가 6월 들어 추락했다. 하지만 2~5일 동안의 하락으로 제자리로 돌아가던 주가가 다시 급등세로 돌변한 것이다.
이와 같은 동반 급등세는 매수세가 쏠렸다는 것 외엔 별다른 이유가 없다.
스팩의 실체는 현금 덩어리다. 기업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발기인(주로 금융회사)이 종잣돈을 대고 설립한 뒤 공모를 통해 일반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모아 주식종목으로 상장하는 과정을 거칠 뿐이다. 마땅한 후보기업(비상장기업)을 찾아내 합병을 성사시키기 전까지 기업 내부엔 현금만 존재한다. 종잣돈 보호를 위해 예치한 금액에 약간의 이자가 붙기 때문에 주가도 그 수준에서 거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삼성머스트스팩5호 주가가 6760원이라는 뜻은 2000원이 든 주머니를 6760원 주고 산다는 말과 같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스팩은 우회상장의 도구다.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기업공개(IPO)를 하려면 오랜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보다 빨리 증시에 입성하길 원하는 기업들이 스팩과의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을 선택한다. 하지만 지난 수년 동안엔 IPO 시장이 워낙 뜨거워 굳이 스팩과의 합병에 관심을 두는 기업이나 스팩에 투자하겠다는 투자자들은 많지 않았다.
IPO 대신 스팩을 활용할 경우 기업가치 산정을 할 때 증권사의 입김이 작용해 합병비율이 기업 쪽에 유리하게 정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스팩 투자자 입장에서는 합병비율이 불리하게 결정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피합병법인이 우회상장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합병을 호재로 주가가 오를 때 이익을 실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거꾸로 풀이하면, 이런 일이 진행되기 전까지는 스팩의 주가가 움직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스팩의 주가 급등은 스팩이 대형 합병을 성사시켰다거나 우량 기업과의 합병으로 대박 수익률을 낸 성공사례가 나와서가 아니다. 갈 곳을 잃은 유동성 자금이 들어와 시세를 띄운 것으로 보인다. 시세 조종 등 불공정 거래 가능성도 있다.
스팩 종목들은 덩치가 크지 않다. 오직 우회상장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커야 할 필요성이 낮다. 대부분 시가총액 100억원 미만의 자금을 모아 상장한다. 상장 후 주가가 소폭 오른다고 해도 100억원을 넘지 않는다.
시총이 작다 보니 주가를 움직일 의도가 있는 세력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상장하자마자 뛴 삼성머스트스팩5호는 이틀간의 급등으로 96억원 시총이 325억원까지 불어났다. 전체 발행주식수가 481만주에 불과하지만 이날 상한가 잔량엔 2000만주 이상이 쌓였다. 이 종목은 스팩으로서는 유례없는 908 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급등한 스팩 주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텐데 그 과정에서 피해자만 생길 것”이라며 “스팩 주가가 뛰는 것은 기업 합병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는 5월말 스팩 주가가 급등하자 이달 초 주가가 급등하거나 거래가 폭발한 종목들에 대해 기획감시를 하겠다고 밝혔으나 다시 주가가 급등, 사태를 해결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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