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태현 기자] 한 변호사가 자신이 맡은 사건의 증인에게 사실과 다른 증언을 하도록 제안하고, 불출석을 요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로 진정까지 접수됐는데, 변협과 서울변회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걸로 확인됐습니다. 변협과 서울변회가 소속 변호사를 봐주기 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하지만 해당 변호사는 "당시 사건에 관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달라고 했다"며 "진정을 낸 자에 대해 무고죄로 고소하는 걸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7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변협은 최근 위증을 교사한 의혹 등으로 진정이 접수된 A 변호사에 대해 “위증이나 불출석을 요구하였다기보다는 상호 간 기일 등에 관한 조율을 위해 문의한 것이라는 피청원인(A 변호사)의 주장에 더 부합하다고 보아 진정을 기각했다”라고 했습니다.
A 변호사에 관한 일은 지난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A 변호사는 노조비 8억원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은 진병준 전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건설노조) 위원장의 변호를 맡고 있었습니다. 진 전 위원장은 지난 2022년 6월 사무처 간무들의 폭로로 횡령 건이 불거지자 구속됐습니다. 이후 진 전 위원장은 2022년 12월 1심에서 징역 4년, 2023년 6월 2심에선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진 전 위원장은 재판에 넘겨진 이후에도 직책을 내려놓지 않았고, 자신의 아들에게는 계좌 통장까지 넘겼습니다. 사무처 간부들은 진 전 위원장에게 직무대리 선임과 통장 반납 등 노조 운영 권한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런 요구사항을 알고 있던 A 변호사는 1심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노조 사무처 간부들에게 ‘노조 운영 권한 이양’을 조건으로 위증을 제안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뉴스토마토가> 확보한 80쪽짜리 녹취록에 따르면, A 변호사는 당시 재판에 출석 예정이었던 노조 사무처 간부들과 재판에 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B씨(건설노조 간부)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0월25일 한 카페에서 노조 사무처 간부를 만난 A 변호사는 진 전 위원장에 대해 유리한 증언을 해주면 노조 운영 권한을 넘겨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A 변호사는 사무처 간부들에게 "아주 드라이하게 말씀드리면 필요 없는 송사를 정리하고 재판을 도와달라, 화해해달라라는 게 이분(진 전 위원장) 입장이에요"라면서 "물건을 사고파는 식, 이거 줄 테니까 뭐 해달라 이런 건 절대 아니고"라고 합니다. 이어 "B씨가 이제 운영을 하시고 손을 떼겠다, 이런 게 주된 내용이다"라고 부연합니다.
A 변호사는 화해를 중재하면서 진 전 위원장과의 횡령 혐의 형사 재판에서 증언을 바꿔달라는 취지로 요청합니다.
A 변호사는 "사무처장님이 책임져주거나 원래 하실 수 있었던 그 상황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주세요. 저희가 뭐 거짓 증언을 바라거나 이런 거는 뭐 아니에요"라며 "지금 수사기관에서 하신 내용이나 말씀을 들어보면 지금 이 모든 게 다 그냥 위원장이(한 것이)고 뭐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지금 짜여져 있다"고 말합니다.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B씨는 "그러니까 변호사님은 실제 잘 모르고 하시는 거예요? 진짜 그렇게 믿으시는 거예요?"라고 반문합니다. 진 전 위원장의 횡령 관련해 사무처 간부들은 수사기관에서 모호한 부분은 모호하다고 답변했고, 알고 있는 사실을 설명했는데 이에 대해 입장을 바꿔달라는 요구는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녹취록에 따르면 A 변호사는 “묻고 싶은 건 (유리한 증언이) 가능하냐는 거예요”라며 “그러니까 저희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이런 어떠한 항목에서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부분에서 유리한 증언 정도 해주시면 되는 것이지, 이걸 뒤집고 거짓말을 해달라 이런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B씨는 “거짓말이…제가 아는 것과 다르게 (진술하는 것이) 거짓말 아니에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B씨는 A 변호사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수사기관에서 사실대로 말했는데, 이를 뒤집고 다른 진술을 할 수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A 변호사가 B씨에게 이 같은 요구를 한 것은 B씨가 진 전 위원장의 재판에 출석하기 12일 전 일이었습니다.
A 변호사는 B씨의 거절에도 진술을 번복해달라는 요구를 재차 합니다. 재판에는 수사 검사가 아닌 공판검사가 들어오기 때문에 진술을 번복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A 변호사는 "모든 조서를 저희가 부인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 재판의 증거로 하나도 채택이 안 됐어요. 그래서 지금 나와서 법정에서 하시는 말만 판사가 볼 수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러니까 (증언을) 새로 하면 돼요"라고 했습니다.
이에 B씨가 "변호사님 그렇게 하면 검사가 가만히 있겠어요"라고 되물었고, A 변호사는 "지금 얘(검사)는 수사검사가 아니라 공판하는 애잖아요. 새로 다시 수사를 할 수 없는 애예요"라고 답변합니다.
거짓 증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A 변호사는 "그러면 불출석 가능하신가요"라고도 묻습니다. 대화 과정에서 A 변호사는 "저희가 설마 위증 어떻게든 뭐 해가지고 골로 보내겠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진 전 위원장은 1심에서 징역 4년을 받았고, 2심에서는 징역 5년을 받았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A 변호사가 B씨 등이 증인으로 출석하기 전에 이들을 만나, 피고인(진 전 위원장)이 다투는 부분에 유리한 증언을 해달라고 요구했고, 그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우면 법정에 불출석 해달라는 요구도 했다"는 내용도 인정됐습니다.
A 변호사와 노조 사무처 간부들의 녹취록 중 일부 캡처. (사진=뉴스토마토)
B씨는 A 변호사의 행동이 비상식적이고 윤리적이지 않다고 판단, 2023년 10월 서울변회에 진정서를 냈습니다. 그러나 서울변회는 녹취록 내용을 확인했음에도 지난해 3월 A 변호사에겐 문제가 없다는 취지를 B씨에게 통보했습니다.
당시 서울변회는 "객관적인 사실과 다른 내용의 진술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된다"고 했습니다. 증인에게 불출석을 요구한 것엔 "불출석을 요구했다기보다는 상호 간 기일 등에 관한 조율을 위해 문의한 것이라는 피진정인(A 변호사)의 주장에 더 부합한다"며 진정을 기각 했습니다.
B씨는 지난해 4월 변협에도 진정서를 냈습니다. 그러나 변협도 지난 1월 서울변회의 판단이 옳다고 보고 해당 진정을 기각했습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변협과 서울변회 등의 판단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옵니다. A 변호사 일을 잘 알고 있는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위증을 요구받았다는 얘기를 했고, 그에 대한 녹음파일까지 제출됐는데 징계 사유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A 변호사에게도 반론을 요청했습니다.
A 변호사는 B씨에 대해 '무고죄'로 고소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입니다. A 변호사는 "B씨가 변협에 징계 요청한 내용은 본인에게 '허위 증언'을 요구했다는 내용이었다. '유리한 증언'이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피고인의 변호인이 재판을 유리하게 성공시키려는 것은 변호인으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진 전 위원장과 일했던 당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달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이어 "당시 건설노조 자문 로펌 소속이었기 때문에 B씨를 못 만날 이유가 없었고, 진 전 위원장 사건뿐만 아니라 각종 민형사 쟁송 해결이 목적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가 변경 신청을 해도 되지만, 불출석해서 증인으로 나오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출석 날짜를 변경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며 "B씨가 (변협 등에 진정을 낸 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건에 영향을 주려는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태현 기자 taehyun1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