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이지유 기자] 최근 수년간 유통업계에서 중대 산업재해(산재) 발생 빈도가 높아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인적 및 공급 수요 기반의 전통산업인 유통업은 전반적으로 노동 강도가 비교적 높은 편에 속하는 것이 특징인데요. 특히 공장 가동을 통한 제조업 토대의 식품업계와 노동자 비중이 높은 대형마트 등에서 산재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패턴의 산재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통가에서 산재 사고가 발생하는 데에는 무리한 작업 환경과 과로 문제, 노동자 본인의 과실 등도 있지만, 업계 전반에 걸친 '안전 불감증' 만연이 단연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식품·채널 등 산재 발생 빈도 높은 유통업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유통업계에서도 공장 가동이 활발한 식품업계에서의 산재 발생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많은 공사 현장을 두고 있는 건설업 정도는 아니라 해도, 소비자들과의 접점이 많은 빵, 과자, 라면 등을 생산하는 업체들의 산재 발생률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는데요. 특히 사망사고의 경우 사실상 끼임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선 유통가에서 사망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한 기업은 SPC그룹입니다. 지난 5월 경기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여성 노동자 1명이 컨베이어에 끼임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앞서 2023년 8월에는 경기 성남시 샤니제빵공장에서 여성 노동자가 반죽 볼 리프트에 끼여 숨졌고, 2022년 10월에는 20대 여성 노동자가 경기 평택시 SPL 공장에서 샌드위치 소스 혼합기에 끼여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아워홈에서도 비슷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4월 아워홈 경기 용인2공장에서는 30대 남성 노동자가 기계 끼임 사고로 인한 중상을 입으며 사고 발생 5일 만에 사망했습니다.
특히 아워홈의 '2024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고서'에 따르면 아워홈의 LTI(근로 손실 재해 건수)는 지난 2021년 93건, 2022년 115건, 2023년 133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아울러 100만 시간당 LTI를 뜻하는 LTIFR(근로 손실 재해율) 역시 2021년 4.3, 2022년 5.3, 2023년 5.7로 계속 높아졌습니다.
오뚜기 역시 산재가 최근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오뚜기의 '2025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오뚜기에서 발생한 총 재해 건수는 2022년만 해도 4건, 2023년 5건이었지만 지난해 16건으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오뚜기의 경우 산재가 모두 협력사에서 발생한 것이 특징입니다.
한편 삼양은 '2024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업무 관련 LTI가 지난 2022년 10건, 2023년 5건, 지난해 3건으로 감소 추세인 것으로 공지했습니다. 하지만 삼양식품은 초과근무 동의서를 기반으로 주당 최대 58시간에 달하는 2교대제를 운영해왔고 이로 인해 노동자 피로 누적과 안전사고 가능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돼왔습니다. 이에 삼양식품은 이달부터 밀양, 원주, 익산 등 4개 생산공장에서의 특별연장근로를 중단했습니다.
산재 발생은 주요 유통 채널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 받은 '대형 유통 업체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건수는 지난 2017년 192건에서 2022년 539건으로 5년 사이 3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특히 2023년 상반기 당시 대형마트 3사에서는 산업재해가 총 301건이 발생했는데요. 홈플러스가 153건, 이마트가 102건, 롯데마트가 46건을 기록했고, 모두 넘어짐 사고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아울러 이커머스 선두 업체인 쿠팡의 경우 물류 센터와 배송 기사 중심으로 산재가 집중되는 형국을 보였는데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 집계된 쿠팡과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쿠팡CLS)의 평균 산업재해율은 5.9%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노동자 100명 중 6명 가까운 인력이 산재를 입었다는 의미인데요. 이는 지난 2023년 고용부가 발표한 건설업 재해율(1.45%)의 4.06배에 달합니다.
(제작=뉴스토마토)
업계 퍼져 있는 안전 불감증…"본질적 안전 다룰 필요"
이 같은 유통업계 산재는 과중한 심야 노동에 따른 과로 누적, 수익성 확보를 위해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작업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발생하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대형 건설 현장과 같이 사망사고가 많이 발생하지 않다 보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만연해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통적인 유통업, 예컨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은 상대적으로 산재 위험이 낮은 업종으로 여겨졌다. 이는 실내에서 이뤄지는 서비스 중심 업무가 대부분이었던 탓"이라며 "하지만 최근 이커머스 업체들이 직접 물류를 운영하면서, 유통업 내 산재 사고 비율은 점차 높아지는 추세"라고 분석했습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유통업은 전통적인 제조업이나 건설업에 비해 산재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이지만, 실제로는 결코 산재 위험이 낮다고는 보기 어려운 산업군"이라며 "특히 유통업은 물류 창고, 운송, 매장 내 노동 등 다양한 업무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재 위험을 안고 있다. 게다가 단순 사고뿐 아니라 직업병 발생 가능성도 상당히 존재한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는 주로 충격적인 사고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지만, 산재 사망자 2000여명 중 60% 이상이 질병에 의한 사망"이라며 "이를 감안하면 직업성 질병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특히 유통·운수·물류 분야는 건설업이나 제조업 다음으로 질병성 재해 비중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따라서 유통업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거나 산재와는 무관한 업종이라는 인식은 오해에 가깝다"며 "사고뿐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재해까지 포함해 유통업 종사자의 안전을 보다 본질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지난 5월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경기 시흥시 SPC삼립 시화 공장. (사진=뉴시스)
김충범·이지유 기자 acechu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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