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두고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간 인식차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가계부채 증가세를 통제하고 있는 만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한 반면, 한은은 소득대비 과도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관 특성상 경제지표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가계부채 정책 혼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금융위 "가계부채 관리 가능한 수준"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관리의 중요성에는 공통적으로 공감하고 있지만, 표현의 온도차가 있습니다. 금융위는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상성장률 3.8% 내로 관리하겠다며 가계부채 관리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현재 상황은 통제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경제 성장에 따라 부채 규모도 자연스레 늘어나는 것이므로 절대액보다는 GDP 대비 부채비율을 봐야 한다"며 "현 시점에서 한국의 가계부채는 증가세를 통제하고 있는 만큼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본다"고 평가했습니다.
금융위 내부에서는 지난 2021년을 정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대에서 90%대 초반으로 들어선 것을 중요 신호로 보고 있습니다. 이 비율은 2021년 98.7% 2022년 97.3% 2023년 93.6% 2024년 90.5%로 떨어졌습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경제가 성장하면 부채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가계부채의 절대적인 규모보다는 가계부채의 증가세와 질적 구조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며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율은 명목 GDP 성장률 범위 내였고, 그 결과 GDP 대비 부채비율도 소폭 하락세를 이어갔다"고 설명했습니다.
금융위에 따르면 신규 취급분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고정금리 비중이 70%를 웃도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또한 변동금리에 보다 낮은 한도를 부여하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도입되며 차주들의 고정금리 선호도가 더욱 커졌습니다.
금감원 역시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경계심을 유지하면서도 가계부채 관리의 전반적 수준은 안정적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감독기관인 금감원은 개별 금융사의 건전성과 차주의 상환능력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 연체율 수준에 대해 과거 평균보다 낮고 은행의 손실흡수 능력이 개선되어 있어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본다"고 평가했습니다.
지난해 12월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 중회의실에서 열린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경제금융당국 수장들이 입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복현 금융감독원,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 (사진=뉴시스)
한은 "가계부채, 소득 대비 과도"
같은 지표를 놓고 한은의 해석은 다릅니다. 금융당국이 언급하는 가계부채 구조 개선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절대 수준의 위험이 여전히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대에서 90%대로 내려온 것에 대해서도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고 평가했습니다.
한은은 "부채비율 자체가 주요 선진국 및 신흥국 평균보다 월등히 높고 위험 임계치 80%를 훌쩍 넘어선 수준이기에 거시경제에 부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과도한 가계부채 규모가 통화정책 운용의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특히 고정금리 확대가 무조건적인 안전판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게 한은의 시각입니다. 대출 차주들이 향후 금리인하 국면에서 부채를 더 빠르게 늘릴 유인이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금리가 내려가더라도 기존 대출이 고정금리라 이자부담이 그대로인 차주는 추가대출을 통해 더 싼 자금조달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은은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을 책임지는 거시경제 정책당국입니다. 물가안정이 주목적이지만 금융안정 없이는 통화정책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에 거시적 리스크 관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금융위·금감원은 금융시장과 업권 감독을 담당하는 미시적 규제기관으로서 개별 금융사의 건전성과 금융소비자 보호, 경기 상황 등을 함께 고려합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의 가계신용(가계 빚) 잔액은 1927조3000억원입니다. 지난 2002년 4분기 관련 통계 공표 이래 최대치입니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금융기관에서 빌린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이용액(판매신용)을 합친 포괄적인 빚을 뜻합니다. 지난해 1~3분기 명목 GDP가 전년 동기 대비 6% 이상 성장했지만 연간 가계신용 증가율은 2.2%에 그칩니다.
가계부채의 위험성에 대해 정부와 한국은행 간의 미세한 인식차가 감지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 본 아파트 밀집지역.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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