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방역이 과학인데
2020-09-03 06:00:00 2020-09-03 06:00:00
정권을 막론하고 대통령이 매년 청와대에서 진행하는 행사가 있다. 각계 종교지도자들을 초청해 만찬을 하며 그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선 이후 몇 번이나 종교지도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해왔다. 문명화된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세속화다. 종교가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윤리적인 기준을 제시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반도 안된다. 한국인의 56%가 무종교인이며, 가장 많다는 개신교인의 숫자는 그 절반도 되지 않는 20%에 불과하다. 만약 한국사회를 떠받치는 상식이 있다면, 그건 종교인이 아니라 무종교인에 의해 지탱되는 도덕적 실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종교지도자를 청와대에 모신다. 그게 전부 선거를 위한 표 때문이란 걸,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전광훈이라는 인간 때문에 코로나 방역에 문제가 생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개신교회에 경고의 목소리를 보냈다. 그것도 모자라 청와대는 지난주 교회 지도자 초청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바이러스는 종교나 신앙을 가리지 않고” 감염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방역은 신앙의 영역이 아니고 과학과 의학의 영역이라는 것을 모든 종교가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다”고 발언했다. 유사과학이 과학자를 고소하고, 창조과학이 진화론을 교과서에서 제거하려 하고, 사기꾼들이 백신이 효과 없다고 수 만명의 학부모를 속여도 아무 말 없던 대통령이, 교계에서 목사 지위마저 박탈 당한 전직 개신교 목사 한 명 때문에 이제서야 과학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방역은 과학과 의학의 영역이다. 그건 상식이다. 문제는 한국 종교인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개신교계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런 상식을 거부하고 대면예배를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강행하는 몰상식이다. 대통령이 그런 몰상식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혼내려 했다는건 잘 알겠다. 하지만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인재들 중에는 과학적 상식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몇 번 말했지만 문재인 청와대는 문과정부다. 문과정부가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란게, 겨우 교회 지도자들을 불러 혼내는 것이라면 문과정부의 한계란 너무 뻔하다. 
 
청와대가 먼저 했어야 하는 일은 보건의료계를 위로하고, 그들 모두에게 포상을 해주는 것이었다. 우리가 경험한 코로나19의 성공적인 방역은 정은경 청장과 보건의료계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현장에서 계속 방역을 해야 하는 보건의료계 지도자들은 청와대에 들어가 간담회를 할 시간조차 없다. 청와대는 개신교계의 방역 거부를 질타하기 전에 먼저, 보건의료계를 감싸 안아야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보건복지부는 의료계와 갈등을 빚을 것이 뻔한 의사 증원 카드를 꺼냈다. 의협의 총파업 결의와 전공의들의 진료거부가 옳다는 뜻이 아니다. 정치와 행정으로 국가 중대사를 해결해야 하는 청와대와 대통령의 시야가 너무 좁고 편협하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단 한번도 과학기술계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지 않았다. 그동안 청와대에는 문화예술계 원로들, 교육계 인사들, 심지어 아카데미 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까지 초청받았지만, 과학기술계는 단 한번도 초청받지 못했다. 코로나 사태에서 K방역의 핵심인 진단키트 공급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인 과학자도, 백신개발과 치료제 개발에 여념이 없는 바이오기업인도,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지금까지 코로나 관련 통계를 정리하고 있는 개발자 부부도, 청와대는 초청한 적이 없다.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가 문과정부인 이유는, 언어유희가 아니라 실제로 청와대가 국가를 경영하는 기조에서 과학기술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와 의료계가 없었으면 코로나 사태로 무너졌을지도 모를 문과정부가, 개신교계의 반발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진짜 챙기고 응원해야할 이들은 배제하고 있다.  
 
얼마전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 천문은,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 지도자의 비전과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훌륭한 영화다. 조선은 세종의 머리와 장영실의 손을 통해 건국 이후 지속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대통령은 천문을 영부인과 관람하고 나서 세종 시절 우리의 과학기술이 우수했다는 아주 짤막하고 허탈한 관람평을 남겼다. 대통령이 그 영화에서 봤어야만 하는건, 조선시대 과학기술의 우수성이 아니라, 한국 과학기술인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깨달음이었어야 한다. 대통령은 과학기술정통부 장관을 대동해 그 영화를 관람하고, 국가의 미래전략을 위해 과학기술계와 간담회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문과정부는 그걸 하지 않았고, 할 수 없었다. 방역이 과학인데, 청와대엔 과학자가 없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Woo.Jae.Kim@uottaw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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